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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Jan 09. 2018

1987,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나

역사는 진보하는가, 혹은 퇴보하는가.


하지만 저 질문은 온당치 못하다. 역사는 진보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전제를 승인해야만 성립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마냥 진보만 했다면 어찌 세상이 이 모양일 것이며 마냥 퇴보만 했다면 또한 어찌 이렇겠는가.


대한민국의 80년대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축적된 정치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극성기를 맞이한 시기였고 1987년은 그 정점이었다. 독재자가 쓰러진 자리에 깡패가 앉아 나라를 조직폭력배의 방식으로 통치했다.

국민들의 요구를 폭력으로 덮고, 그 폭력을 거짓말로 덮고,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다시 폭력이 동원되었다. 정권은 폭력과 거짓말로 연명했다. 경찰, 군, 정보기관, 사법기관을 망라한 국가의 모든 공적 조직은 빨갱이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국민들로부터 정권을 보호했고 진실을 알고 있던 미국이나 일본조차 자국의 이익이나 안보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냉혹하고 무자비한 불의 앞에 대학생들의 피가 뿌려졌다.


그리고 어찌되었나. 자신의 폭력과 거짓말이 부메랑이 되어 정권은 국민앞에 항복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소위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발표했다. '오늘은 기쁜날'을 내건 커피숍들이 시민들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해 12월에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노태우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양김의 분열이 일차적 원인임은 분명했지만 그 분열이 지역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는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감상평이 쏟아지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누구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말했고 누구는 감사함을 말했다. 다 맞을 것이다. 거기에 딱 한가지만 보태자. 죽음이 하나 더 있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노래, <가리워진 길>의 주인공 유재하. 그는 그 해 8월에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했고 11월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앞서는 감수성과 세련미로 전문가들에게조차 생소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후에 재평가된 그의 음악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었다. 극히 매니아적인 특정 장르가 아니라면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한국의 대중음악은 없다. 한국 대중음악의 감수성은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일도 1987년에 있었다. 그토록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까.


영화에서 연희는 물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이 질문은 존재론적이다. 대답은 바뀌거나, 안 바뀌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연희는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가치론적 대답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뀔지 안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바꾸어야 함은 분명하지 않은가' 버스위에 올라가 팔뚝질을 하는 연희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대미를 장식한다. 강철은 그렇게 단련되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세상은 바뀌는가. 물론이다. 세상은 늘 바뀐다. 그렇게 해도 바뀌고 그렇게 하지않아도 바뀐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자. 세상은 나아졌는가. 모르겠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운전하는 동안 자동차의 핸들을 한시도 놓을수 없듯이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세상이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질문만은 잠시도 놓아서는 안되는거 아닐까.


잘못하면 또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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