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에게
동은아,
너의 복수는 치밀하고 완벽하더구나. 부르크너의 심포니 같이,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가까이서 보면 침엽수 같이 빈틈이 없더구나. 가해자들의 연대는 서로를 파멸시키는 지옥이었고 피해자들의 연대는 서로를 보듬고 눈물을 닦아 주며 새로운 삶으로 등 떠밀어 주는 낙원이었어. 피날레로 갈수록 정말 가관이더라.
그래 맞아. 모든 절망은 희망이 되어야 하고 모든 울음은 웃음이 되어야 하지. 복수의 가장 완벽한 결말은 그래야하지. 가해자들의 폐허위에 피해자들의 폐허가 겹치는 그런 우울하고 씁쓸한 결말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너는 환하게 웃었지. 하지만 그럴 뻔 했잖아. 네가 택하려던 결말. 여정 어머니의 외침이 아니었다면 네 복수의 끝은 악마들의 지옥위에 스며드는 허망하고 부질없는 눈송이 같을 뻔 했잖아. 여정 엄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네가 살아주길 빌었지. 네가 부동산 할머니를 살렸고, 그 할머니가 또 너를 살렸고, 여정은 자기 엄마를 살렸겠지. 현남도 그런 방식으로 살았고 모든 피해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지.
동은아,
미처 생각 못했어. 복수의 출발과 끝이 삶이라는 사실을. 너의 복수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시작되었고 생명을 살림으로 끝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 생명의 존엄, 생명의 영광, 생명의 눈물겨움... 그게 너의 복수가 가리킨 지점이었음을, 19살에서 생이 멈추었던 너와 이미 죽은 소희가 다시 사는 방식이었음을, 그래서 복수가 구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지옥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복수가 있고 지옥에서 벗어나는 복수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어.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는 것을.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지. 그 말은 맞는 거 같아. 가해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으로 서로를 파멸시켰지. 하지만 비슷하게 생명은 생명을 낳고, 삶은 삶을 부르더구나. 그 방식은 [나의 아저씨]의 결말에서도 본 것 같아. 서로를 삶으로 등 떠밀어 주는 것, 서로를 살게 해주는 것, 至善.
동은아,
부디 살아서, 오래오래 살아서 모든 날들의 영광이 너와 여정에게 함께 하길 빌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