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신 장군을 기리며
12.12 군사반란 사태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을 12월 12일에 봤다는 사실은 하나의 농담같았다. 하지만 12.12사태와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농담과는 무관한 지독한 악몽이다. 우리 역사가 아직 씻지 못한 악몽,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악몽...
슬픈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디 육군참모차장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를, 국방장관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를, 8공수 여단이 돌아가지 않기를, 30경비단에 포격이 가해지길 빌면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역사의 스포일러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스러웠다.
이태신 장군은 자신의 권총만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서 멈추었고 그의 멈춤으로 1979년 12월 12일 이 땅의 정의와 역사도 그 자리에서 함께 멈추었다. 다음날 조간 신문에는 탱크가 광화문에 진주한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군사반란의 완성이었다.
허무와 절망은 어디서 오는가. 악의 기도(企圖)가 성공하고 거대한 암흑이 온 세상을 덮을 때, 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무런 희망도 없을 때, 이 세상이 그저 제멋대로, 미친 바람에 흙먼지가 날리듯 흘러갈 때, 그래서 역사의 교훈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말들이 다 개소리처럼 느껴질 때.
누가 역사의 승자인가,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과연 역사에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는 것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것은 그저 탄식과 한숨 뿐.
부족하지만 관련된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