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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n 08. 2020

노을이 뜰 때면 하늘을 봐

음악은 적당히 청량한 걸로






어릴 때는 구름 적당히 낀 파란 하늘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파스텔 빛의 하늘색에 핑크빛 머금은 구름이 함께할 때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세상에서 제일가는 포토존이 된다.


사람들은 하늘을 볼 여유가 없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교에서 못 본 웹툰을 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기사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21세기에만 가능한 보행법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직 하늘 볼 여유는 있는 내가 가방 속 깊이 넣어두었던 나만의 작은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시선을 끌기 좋은 소리를 내며 하늘을 담는다.

역시 나는 관심 끄는 걸 잘한다. 일제히 주변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시선을 두었고

그곳에 선 웬 청년 하나가 하늘색 진을 입고 사진을 팔을 하늘까지 솟구치게 뻗고 있다.

그들은 그제야 하늘을 보았다. 교복 입은 학생은 물론, 츄리닝 바지를 입고 슈퍼를 갔다 나온 남성도, 한쪽 팔에 서류를 끼고 시계를 보며 걷던 여성의 걸음도 일제히 멈춰 섰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지금 아니면 못 봐요! 자, 다들 눈에 담을 시간이 없으면 휴대폰에 담으세요!'


그러자 트렌드에 민감한 10대는 기사는 잠시 내리고 필터 깔린 렌즈로 세상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냈고

시계를 보던 여성은 서류를 떨어트렸다. 슈퍼 앞에서 멍하니 서있는 청년을 보노라니 주인집 아주머니는 가게 밖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는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청년은 한참을 서있다 포토타임을 놓칠세라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은 다시 앞을, 밑을 보며 걷는데, 침묵의 무대에 주인공이 되기는 부끄러웠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의 부끄러움에 용기를 한 숟가락 주기 위해 아까보다 기쁘게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아직 가지 않은 청년은 휴대폰 렌즈를 회색 츄리닝 바지에 슥슥 닦아내더니

만족할 만큼 값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시 걸었다. 검은 봉지 속, 콘 꼬랑지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튀어나온지도 모르고

웃는 모습에 빵 터질 뻔했지만 속으로 웃어내느라 꽤 진땀을 뺐다.


찰나의 명작 속에 서 있는 세 사람은 그 어떤 미술관에서도 보지 못한 걸작이었다.

다시는 보지 못한 대도 평소처럼 눈물은 나지 않을 것 같다.

다음 순간에서야 나는 또 세계에 이름을 새길 걸작을 보았노라고 떠들어댈게 뻔하니.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고서야 예상치 못한 성과가 따라왔다.

그 누구도 이런 순간을 상상이나 했을까.

10년 전 202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던 이는 아마 이 하늘은 그곳에서 보지 못했나 보다.


오늘은 글한테 투정을 좀 부려야겠다.

몇 새만에 만난 반가운 노을을 깊게 음미하지 못했는데 '노을'이라는 것에 꽂혀 글을 쓰느라

아직 부르지 않은 밤이 찾아왔다. 할 수 없이 노트북을 덮어야겠다. 더 이상의 글쓰기는 과한 감수성을 불러와 독자의 손과 내 발끝을 오그라들게 할 것은 내가 그 예언가보다 5분 일찍 말할 수 있다.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밤하늘 몇 없는 별을 세보러 가야겠다. 부디 오늘 내가 담는 별은 인공위성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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