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한 인간의 처절한 행위.
설거지 하나로 으쓱했다가 옹졸해지기도 했다가
마음이 쪼그라들었다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가
집안일의 척도가 되었다가 내가 아니었다가
네가 특별히 하는 게 되다가 아이가 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없는 게 되고
그릇을 깨며 화를 드러냈다가 기억을 잃다가 피가 나다가
정신이 번쩍 들다가 마지막이었다가 처음이었다가
발가락에 박혔다가 새로 산 잠옷에 거품을 묻혔다가
맨손으로 겨울날 단련을 했다가
기름기가 손톱 사이에 꼈다가
따듯한 물로 배에 오줌을 쌌다며 가족들에게
놀림받다가
10평 바닥에 고양이 수영장이 생겼다가
아이에게 처음 설거지를 가르쳐 주는 날,
나의 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고모도 이모부도 은사님도 엄마도 아빠도
직장 선배도 학교 후배도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이 일을 하게 된 처음,
이 세상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행위 하나만으로
어른이 되었다거나
원망했다거나
기뻤다거나
누군가를 찾았다거나
울었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강력한 물소리가
싱크대는 뚫지 못했어도
마음은 흐느꼈다거나
배수구가 막혔다거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 똑, 똑
떨어졌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