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예약을 위한 두뇌 풀가동
기자미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약 8년 전이다. 공공기관에 다니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도 기자미팅에 따라갔던 적은 몇 번 있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을 능숙하게 대하는 팀장이 있었기에 내 역할은 리액션하는 방청객 정도였다. 사기업이 아니다 보니 긴장이나 부담이 될 요소도 확실히 적었다. 이후 사기업, 심지어 그동안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IT 분야로 이직하며 나 혼자 기자미팅에 나서게 되니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미팅을 성사시키는 것도, 기자를 만나 대화하거나 회사 이야기나 업계 동향을 나누기도 물론 어렵지. 하지만 첫 난관은 역시 식사 장소 예약이다.
지역은 기자의 일정에 따라 정해지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경우 삼성역, 강남역, 광화문, 여의도가 많았다. 이런 지역은 갈 만한 식당을 미리, 잔뜩 찾아두는 것이 편하다. 드물게는 한남동, 방배동, 구로 등에 갈 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지역에서 3개 내외의 선택지를 주는 것을 선호한다. 너무 시장통 같지 않고, 접근성이 좋고, 메뉴가 겹치지 않는 선택지들이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 싶을 수도 있지만,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이왕이면 제일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게 대화하는 게 좋으니까. 홍보담당자나 기자의 성향에 따라 한쪽이 장소를 정하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다. 검색하거나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최우선순위는 역시 예약 가능 여부다. 친한 기자와 뜻이 맞을 때야 예약 없이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만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약이 안전하지. 네이버나 캐치테이블 예약이 가능하면 베스트고, 전화 예약도 나쁘지 않다. 단, 캐치테이블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을 맞추려면 손품을 좀 들여야 한다.
예전에는 첫 만남엔 최대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또 그렇지만도 않다. 어색함과 불편함이 더해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짬이 생긴 지금이야 좀 덜하지만, 초반에는 기자미팅을 할 때면 밥이 도대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평소보다 덜 먹어도 배가 불렀다. 나만 이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해진 기자분이 나중에 말하길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날 땐 본인도 심히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 피차 불편해도 사회인이니까 안 그런 척하는 거지. 기자가 특별히 룸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오픈된 공간, 너무 조용하지 않은 (하지만 지나치게 시끄럽지도 않은) 분위기가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고급스럽고 룸이 있는 식당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 회사의 대표나 임원과 언론사 데스크가 만날 때는 정말 심혈을 기울인다. 정직하게 'OO역 룸식당'을 검색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상견례 맛집을 검색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다. 네이버의 비서 카페를 참고하거나 오찬, 만찬 등의 키워드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김영란법 초반에는 29,000원이나 30,000원짜리 런치 코스도 꽤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물가가 워낙 높아져서인지 많이 줄었다.
3, 4성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 중에서도 김영란법의 선을 지키면서 괜찮은 곳들이 있다. 호텔 내 업장이라서 예약이 편하고, 음식과 서비스도 만족스럽고, 대접하는 느낌도 나고.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차분하지만, 또 호텔 내 업장치고는 저렴해서 캐주얼한 분위기도 한 스푼 있다. 제발 앞으로도 3만 원 이하의 런치 메뉴를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
필수사항까지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식성을 파악해두면 당연히 편하다. 업무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친한 친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을 알아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알러지가 아닌 이상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식당을 선택하는 취향이나 은연중에 말하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밀가루는 소화가 잘 안된다든지, 국물을 선호한다든지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20대 여성 기자라면 무조건 깔끔하고 예쁜 곳을 제안한다는 식의 너무 전형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연차가 높지 않은 여성분과 노포를 가기도 하고, 중년의 남성분과 '핫플'을 가기도 한다. 선택지라는 건 그야말로 좋은 선택을 위한 것인데, 선택의 폭을 좁혀버리면 의미가 퇴색된다. 여러 유형의 맛집을 많이 알아두고 제안하면 서로 더 즐거운 미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일정은 정확하게 정하고 공유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 대개 만날 날짜와 지역은 통화로, 식당과 시간은 카카오톡이나 메시지로 정한다. 만약 모든 걸 전화로 정하더라도 미스 커뮤니케이션을 막기 위해 확인 카톡이나 메시지를 보내두는 것이 좋다. 전날이나 당일에 리마인드 메시지까지 보내면 더 좋고. 다만 리마인드 메시지를 싫어하는 분들도 가끔 있기 때문에 이건 상황과 성향에 따라 적당히 판단하면 될 것 같다.
기자와 홍보담당자가 이쪽 업무와 관계없는 지인으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법카로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좋겠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법카로 맛있는 거 많이 먹는다'까지는 맞다. 그러나 '좋다'는 표현은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어쨌든 업무에 기반한 관계이기 때문에 주말에 친구와 만나서 브런치를 먹는 것과는 다르다. 언젠가 기자미팅에 동석했던 후배가 '다시는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차라리 혼자서 김밥천국 가고 싶다'는 우스갯소리에 기자든 홍보담당자든 상당 부분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기자미팅을 업무로만 생각하면 너무 괴로울 것이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서 회사 얘기도 하고, 업계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고 그런 거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업무적 용건은 어차피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 말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의 근황이나 업계 소식 같은 거야 적당한 선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하지만, 그 외에 일부러 뭔가를 푸시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니 좋은 자리, 즐거운 자리를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하지. 신나게 대화하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게 내 기자미팅의 가장 큰 목표다. 가끔 지치고 피곤할 때도 이 목표를 잊지 않고 긍정적으로 실현해나가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