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이 망했어요
성공적인 이직이라고 생각했다. 연봉이 올랐고, 통근 시간이 단축됐고, 네임밸류를 얻었다. 드디어 PR만 전문적으로 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됐다.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역시 많다고 했다. 근무 환경이나 복지 역시 신세계였다. 모바일 사원증도 처음 사용해 봐서 마냥 신기한데, 무료 자판기에 체형 관리 서비스라니! 퇴사와 입사 시기가 잘 맞아 한 달간의 리프레시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적응만 남았다.
희망차게 시작했으나 나의 이직은 야무지게 망했다. 역량, 분위기, 흔히들 말하는 ‘핏’... 이직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나의 이직을 요약한다면 가스라이팅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세뇌당했다. 물론 세뇌당한 것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나름대로 또라이를 많이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나의 상사인 그가 또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언성을 높이거나 욕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업무에도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없고 남들처럼 잘 사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친절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상사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회사에서 가장 한가하고, 인턴만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여러 가지 패턴과 표현으로 반복해서 들으면 사실이 된다. 평소와 달리 녹음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차분하게 ‘맞는’ 말만 했으니까.
그가 나를 대할 때의 반복적인 패턴이 몇 개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혼자서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메일 한 통도 스스로 보낼 수 없었다. 처음 영어 메일을 보낸 날에는 Dear 대신 Hello나 Hi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가 작성해 준 이메일에 수신인의 이름을 넣었던 날에는 본인을 무시한다며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라거나 '널 위해서 말해주는 거다'라는 말 역시 가스라이팅에 효과적이었다. 아, 누가 봐도 내가 부족하고 멍청하구나. 난 하루하루 착실하게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우울의 늪에서 살아가며, 슬랙에서 허우적대며.
‘내가 하는 건 다 틀리고 잘못됐다.’ 그것이 가스라이팅의 종착역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행동도 힘들고 어려워졌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가 불만족할 것임을 알았지만, 들이받지도 못했고 포기하지도 못했다. '노력하겠다'는 워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네 알겠습니다' 봇이 되었다.
거의 매일 집으로 노트북을 가져가 일을 했는데, 슬랙을 켤지 말지가 늘 고민이었다. 퇴근 후 슬랙에 내가 없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려는 모습이 없다'고 했고, 슬랙에 있으면 '왜 비효율적으로 일하냐'고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걸 합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니까 당연한 거라고. 사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런 얘기는 해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 지금까지 내가 다닌 회사는 물론 모든 상사와 동료까지 다 잘못됐다는 얘기도. 와이프와 비슷해서 짜증이 난다는 미친 소리도. 그걸 순순히 듣고 있었던 과거의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지.
당시의 나는 웃고 있어도 죽상이었다고 한다. 늘 울고 싶었다. 울고 싶다는 기분이 아니라, 늘 목 끝까지 찰랑찰랑했다. 점심시간은 눈물샘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화장실에서 울었고, 여유조차 없는 날에는 혼자 회의실에서 울면서 일을 했다. 사람이 이렇게 오래, 많이 울 수 있구나.
처음엔 멍청한 내가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하지 못하고, 불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주위에 이야기했을 때, 다들 미쳤다며 기겁했지만 난 그게 내 편을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친하니까. 그리고 내가 내 위주로 얘기했을 테니까.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간호사 출신인 오랜 친구와의 통화였다. 20년을 알고 지냈지만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는 친구는 특히 회사 일이 엮이면 아주 건조하고 냉정했다. 다른 볼일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가 회사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정신 차려. 그게 태우는 거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하지만 바로 그만두지는 못했다. 백수가 되는 게 무서웠다. 이 불황 속에 다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백이 길어지기만 할 것 같아서. 우유부단하게 헤매는 동안 식욕을 잃었다. 써브웨이 30cm를 한 끼에 먹어도 부족하던 나인데, 하루 종일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행히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분과 연락이 닿아 새로운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됐고, 이틀 만에 출근이 확정돼 드디어 탈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퇴사를 말한 순간부터 그는 거짓말처럼 돌변했다. 멀쩡하고 친절하고 유쾌해졌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러했듯. 나의 이직을 축하해줬고,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었으며,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퇴사를 앞두고 몇몇 사람에게 슬랙 DM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퇴사였지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 회사에 다녔다면 계속 몰랐을 여러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오래 버티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길게 이야기할 건 없어서 그저 이직하게 됐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퇴사 당일에는 그와 단둘이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간단한 인수인계를 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쓸데없는 일'이라던 업무를 그는 이제 와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말 휴가 일정에 대해서도 잠깐 대화를 했고, 아주 평범하게 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소름끼칠 정도로 평범하게. 내가 힘들어했던 모든 날이 허무해질 정도로.
내가 그 회사에 다닌 기간은 주말을 합쳐도 고작 60여 일에 불과하다. 입사 후의 적응 기간이나 퇴사 확정 후 인수인계 기간까지 생각하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난 지금도 그의 거스라이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상사와 커뮤니케이션할 때면 신경이 곤두서고 안 좋은 쪽으로 지레짐작한다. 내가 틀렸을까? 뭔가 잘못됐을까?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겠지? 바보 같고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경중을 떠나 내가 가스라이팅 비슷하게 당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가 정말 나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너무 멍청하고 답답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확대해석한 게 아닐까? 어쩌면 이것조차 가스라이팅의 여파일지 모른다. 하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게 쉬우면 가스라이팅 범죄가 왜 있겠어.
예전의 나는 보이스피싱이나 사이비 종교 피해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겨우 이 정도의 경험으로 그 거대한 피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피해를 입게 되는지를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2개월 만에 탈출한 것이 천운이다. 상사 한 명이, 고작 두 달만에 이렇게 사람 정신을 좀먹었다. 무력한 바보 멍청이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가스라이팅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갈 시점이다. 잠깐이나마 재직하면서 받았던 것들도 처분하는 중이다. 아웃백 상품권은 당근에 팔았고, 영화 관람권은 곧 사용할 예정이고, 와인과 케이크와 간식 세트는 먹어 치웠고, 생일축하금은 가계에 보탰고. 포인트 25만 점은 언젠가 사용해야지.
무엇보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며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걷다 보면 가스라이팅의 흔적도 희미해지겠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하지만, 도망치지 않으면 계속 지옥일 뿐이다. 나는 탈출했다. 모든 걸 지옥에 두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