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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캐리 Sep 04. 2022

그들이 사는 세상

정상인들과의 조우

8개월간의 백수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첫 출근을 하게 됐다. 대략 70명 규모의 B2B, IT 분야 중소기업이었다. 최종면접 후 나와 또 다른 지원자가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경력으로만 보면 열세였는데, 마지막에 "여자 직원 중 기혼의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질문한 것이 플러스로 작용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쉽게 이직하기보다는 진득하게 일할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다. 이직하고 싶어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7년 넘게 다녔으니 엉덩이가 꽤 무거웠던 것 같긴 하다.


한 회사를 7년이나 다닐 줄은 나도 몰랐다. 입사 전엔 B2B나 IT 분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합격 후에는 지하철로 환승 없이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니다 보니 워라밸도 복지도 통근 거리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핵심은 결국 사람이었다. 온갖 이상한 사람에 치이고 질린 상태로 입사한 새로운 회사는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 또라이가 없다. 물론 또라이라고 지목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강약약강'도 있었다. 하지만 '또라이'라고 명명하기에는 내 기준에 한참 부족했다. '회사에 또라이가 없다면 내가 또라이'라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떠올리며 사실 또라이는 내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의심하게 된 이유가 있긴 하다. 이전 회사에서의 경력이 워낙 '물경력'이라 얻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진짜 나'는 분명 전화를 싫어하고 낯을 가리며 혼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극 내향형인데, 눈물로 점철된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 활발하고 낯짝이 두꺼우며 리액션이 좋고 노래방에서 사랑의 빳데리를 열창하는 '사회적 나'가 생성되어 있었다. 정상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약간 특이했을 것이다. 다행히 다들 긍정적으로 봐주어서 큰 고민 없이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즐거움'과 '회사생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성희롱과 실내 흡연 없는 쾌적한 근무 환경이, 괴롭지 않은 출근길이 이렇게나 달콤한 것이었구나.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 정신승리까지 가능해졌다. 그래, 더러운 꼴 말년에 보느니 초장에 겪은 게 낫다.


지금까지 홍보나 마케팅을 따로 한 적이 없는 회사라서 일단은 별도 부서 없이 임원 직속으로 일하게 됐다. 1차 면접에서 약간 까칠한 모습을 봐서 조금 신경 쓰였는데, 그건 '면접용 코스프레'였고 사실은 그저 온화한 분이었다. 입사 후 티타임에서 "혼자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전 회사의 팀장은 (말투가 원래 그런 사람이고 악의는 없었지만) "그동안 네가 한 게 뭐야, 네가 해, 왜 못해" 같은 말을 했는데. 혼자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라는 그 말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그날 밤 일기 앱에 기록을 해놨을 정도다.


이후로 몇몇 부서에 소속되어 일했으나 홍보 담당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나였다. 분위기가 정말 좋은 팀도, 개판 오 분 전인 팀도 겪으며 극과 극 체험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홍보 업무를 혼자 하다보니 소속감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대감을 느낀 것은 오히려 세일즈 쪽이었다. 여러 번의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운영하다 보니 손발이 잘 맞았고, 특히 중요한 행사를 잘 마쳤을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한 번은 부스 방문객이 너무 많아 대기 줄이 다른 회사의 부스를 둘러싸는 바람에 잠깐 항의가 들어왔었던 적이 있다. 이벤트 운영하랴, 대기하는 사람들 동선 안내하랴, 경품 나눠주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다들 입꼬리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그에 비례해 만족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 과정에서 가까워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S다. 그를 보며 나는 똑똑한 사람과 똑똑한 척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은 번지르르 말이 앞서지만 뜯어볼수록 핵심이 없고, 책임 앞에서 한발 물러난다. 반면 똑똑한 사람은 목적을 명확히 알고 핵심을 빠르게 파악한다.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을 독려하며, 책임 앞에서 실행력을 발휘한다. S와 함께 일한 시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정말 똑똑한 사람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빛 덕분에 매사에 도움을 받으며 갈팡질팡을 최소화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다른 회사로 찢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지향점이다. 평생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지향점.


K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뿌리가 깊고 울창한 나무 같은 사람이다. 재직 막판의 나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었는데 그의 정서적 지지가 큰 힘이 됐다. K는 점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는 나 대신에 화를 내고 때로는 답답해했다. 언제나 이해하고 공감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에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어떤 도움이든 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말을 아꼈던 것 같기도 하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한 성정으로 인해 이미 어깨가 무거울 것이기에, 짐을 더 지우고 싶지 않아서. 물론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았을 것이다. S와 K, 두 사람이 있어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반쯤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후배들은 내 행복의 일부였다. 늘 함께 다니던 세 명의 단짝 후배들이 조잘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키도 비슷비슷해서 만화 속 공주님처럼 귀여웠다. 같은 부서였던 H와는 관심사가 비슷해 친구처럼 즐겁게 지냈다. H의 인생은 '소확행' 그 자체라서 그만 사라는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어차피 듣지 않는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모델처럼 멋진 B와는 내향인의 고충을 공유할 수 있었다. 늘 어른스럽고 차분한 B가 장난을 걸어오면 그만큼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취미 생활에 초대해줬던 것도 무척 기뻤다. 후배들을 대할 때면 혹시라도 눈치 없이 굴까 봐, 꼰대가 될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이직에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으나 나의 소중한 정상인들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나의 이직으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절반이 넘게 퇴사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아쉬움도 조금 민망해졌다. 대부분 동종업계에 있기에 때로는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심정적으로는 '덜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세월이 가면 계속 지금처럼 지내며 연락이 닿기는 어렵겠지만 너무나 좋아하고 감사한 사람들이기에 기꺼이 노력하려 한다. 7년이 지났고, 사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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