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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Seo Oct 16. 2020

삐걱대는 새 자전거

최근에 거금을 주고 새 자전거를 샀다. 내가 원하는 자전거를 사서 뿌듯했다. 대구에는 1대밖에 없는 제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운이 좋아서 살 수 있었다. 나는 사장님께 현금으로 결제를 할 정도로 정말 잘 산 제품이라 생각하며 끌고 나왔다. 오래 잡고 있어도 피로도가 적은 핸들커버, 도넛 모양처럼 중간이 비어있어 편안한 안장, 번쩍번쩍 빛나지는 않아도 검은색 무광으로 은은하게 자태를 뽐내는 새 자전거를 보고 나는 이 자전거와 함께 국토종주 계획을 꿈꿨다.


부모님이 흔히 자식들이 밥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나는 현관문 앞에서 세워둔 자전거를 보며 얼빠진 놈처럼 히죽히죽 댔다. '쫌만 기다려라! 주말에 꼭 라이딩하러 가자!'라고 자전거에게 속마음으로 외치며 나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늦잠 자는 습관을 벗어던지고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웬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도 전에 자전거는 삐걱삐걱 댔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귀를 째는 쇳소리는 나의 기분을 망쳐놓았다. 소음에 예민한 나는 이 자전거가 타기 싫어졌다. 강변을 따라 달리려던 계획 대신 동네 마실 한 바퀴 돌고 끝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현관문 앞에 계속 세워두었다. 원래 내 물건은 잘 안 빌려주는데, 가족이 타도 되냐고 물으면 미련 없이 타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전거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2달 뒤, 아버지랑 둘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갔다. 아버지와 나는 주로 질문형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오가던 도중, 아버지께서 "자동차 바퀴에서 왜 소리가 나는 줄 아느냐?" 고 물으셨다. "바퀴에 홈이 있어서?"라고 답했다. "자동차 바퀴에서 소리가 안 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대. 너무 조용하면 사람들이 자동차가 있다는 것을 인식 못하나 봐. 왜 테슬라 전기차도 시동 켤 때, 가짜 엔진 소리를 내잖아. 소음이 없으니깐 사람들이 자동차 시동이 켜진 줄 몰라서 여러 가지 사고가 났대. 아빠도 자동차 바퀴소리가 엄청 신경 쓰였는데, 바퀴 소음이 필요한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내 자전거 브레이크 소음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머리가 탁 깨우치는 느낌이 들었다. '맞네! 자전거 소음은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었구나. 소음 덕분에 사고가 날 확률이 줄어든 거였네. 동네에서 자전거 타고 다닐 때, 걸어가던 사람이 내 자전거 소음을 듣고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겠네! 그러면 급하게 방향 전환을 한다던가,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 갑자기 뛰쳐나오지 않겠네! 소리가 난다는 것이 소음 공해가 아니라 오히려 안전을 지켜주는 안전 소음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번쩍 들었다.


나는 항상 소음에 민감했다. 공부할 때도 작은 잡음에 집착했고 '여기는 공부하기 좋지 않네.' 라며 항상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그리고 조용한 도서관에서도 어떠한 잡음도 허용하고 싶지 않아 귀에는 3M 귀마개를 달고 다녔다.


나는 이 깨달음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자전거를 잘 타지 않는다. 소음 때문에?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요즘 바빠서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자전거에 소음이 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이번 주말은 꼭 시간 내서 강변 따라 라이딩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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