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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24. 2023

집 앞에 생긴 스터디카페

나의 아지트

비대면 화상연수를 들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직장에서 듣자니 인적이 드문 곳이라 조금 위험할 것 같고, 집은 방해꾼들이 있어 절대 안 되고, 카페에 가자니 시끄럽고 옷에 커피냄새가 배는 것이 싫었다. 차는 너무 어둡고... 그러다가 집 바로 앞에 스터디카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3시간에 5천 원. 가격도 딱이다. 무인으로 이용하는 곳이라 키오스크가 있었다. 아휴, 우리 남편은 못 오겠구먼.  

3일간의 연수를 그곳에서 들었다. 적당히 조용했고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마지막날엔 인근 학교 시험기간이라 좌석이 부족해 2시간밖에 있을 수 없어서 마지막 1시간은 스터디카페 복도 의자에서 들었지만 복도도 아주 조용했기에 어렵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남편이 외출을 한다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터디카페가 떠올랐다. 그래서 오전에는 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터디카페를 다시 찾았다.


2시간 동안 조용한 공간에 앉아 글을 옮기고 있으니 정말로 행복했다. 공부를 하러 들어오는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진 않았지만 자유시간을 누리러 이곳에 온 아줌마 1인은 그저 행복. 모두가 저마다의 공부로 바쁜 이곳에서 느긋한 사람은 나뿐.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독서실이라는 곳에 처음 가봤다. 친구 집 앞에 있는 곳이었다. 이름하야 "하버드 독서실".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사는 곳에서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는 독서실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동네였다.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무료이다 보니 자리전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나와 친한 1등 친구는 도서관이 아니라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아닌가!! 거긴 자기 자리가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옆 반에 있다는 전교 1등도 거기에서 공부를 한단다. 사물함이 있어서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단다. 한 달 단위로 끊어야 하는데 하루 체험도 가능하단다. 엄마를 졸랐는지, 모아둔 용돈에서 해결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 그곳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잔뜩 챙겨 하버드독서실로 향했다.

친구의 말대로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그녀들은 오래 그곳에 다닌 듯 익숙하게 독서실을 이용했다. 독서실 옆 아파트에 살아서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기도 했다. 나는 처음 이용하는 독서실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 괜히 설레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도서관에 갔으면 나도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을 테지만 그러지 못하니 독서실 근처 분식집에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오후시간은? 배부르니 그대로 쿨쿨. 돈 버리고 시간 버리며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든 생각은 '좋은 경험이었다... 집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나 부지런히 다니자!' 그 도서관에 대학교 때까지 열심히 다녔다. 지금도 그 동네에 살았다면 자유시간을 누리러 그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독서실이라 불리던 곳을 리모델링하여 스터디카페로 운영한다고 한다. 딱히 내부가 다를 것은 없는데 독서실은 낡아 보이고 스터디카페는 꽤 근사해 보이는 효과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새롭게 바뀌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봐. 하버드독서실은 아직 있을까? 하버드 스터디카페로 바뀐 건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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