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요즘 경제 기사, 정책 자료, 기업 보고서를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혁신’입니다. AI 혁신, 규제 혁신, 제조 혁신…. 이제는 혁신이 붙지 않으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 느낌마저 들죠. 그와 함께 ‘혁신 주도 경제’라는 표현도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혁신은 무엇이고, 혁신 주도 경제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혁신을 구호가 아니라 경제가 성장해 온 ‘단계’로 봐야 합니다. 이 관점은 개인의 해석이 아니라, World Economic Forum(WEF)이 국가 경쟁력을 진단할 때 활용해 온 발전 단계 프레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 글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혁신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반복 생산하는 구조이며, 혁신 주도 경제는 그 구조로 임금과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단계입니다.
국가의 성장 방식은 크게 세 단계로 설명됩니다.
요소 투입 단계(Factor-driven): 노동과 자원을 많이 투입해 생산량을 늘리는 성장
효율 주도 단계(Efficiency-driven): 공정·품질·생산성으로 ‘더 잘’ 만드는 성장
혁신 주도 단계(Innovation-driven): 기술·아이디어·비즈니스 모델로 ‘다른 가치’를 만드는 성장
이 구분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비유가 아니라, 국제기구의 보고서에서 실제 경쟁력 진단 틀로 사용돼 왔기 때문입니다.
World Economic Forum은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에서 국가를 발전 단계로 나누고, 단계가 높아질수록 혁신·정교화 요인의 중요도를 더 크게 반영해 왔습니다.
즉,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혁신을 잘하느냐’가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됩니다.
요소 투입 경제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사람(노동)과 땅·자원(요소)을 더 넣으면 생산이 늘고, 경제 규모가 커집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임금이 오르면 비용 경쟁력이 흔들리고,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면 경제 전체가 흔들립니다. 무엇보다 더 싼 나라가 등장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이 바뀝니다.
그래서 이 단계의 경쟁은 결국 가격 중심으로 수렴합니다. 그리고 가격 경쟁은 언젠가 반드시 더 낮은 비용 구조에 밀리게 됩니다.
요소 투입의 한계에 부딪히면 경제는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더 싸게가 아니라,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더 안정적으로 만들 수 없을까?”
이 질문에서 자동화, 품질관리, 공정 혁신, 공급망 최적화가 등장합니다. 한국 경제가 특히 강했던 구간이 바로 여기입니다. 속도, 불량률, 납기, 공정 역량으로 세계 시장을 따라잡았고, 산업 경쟁력의 체감도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효율 경쟁은 시간이 지나면 표준화·평준화됩니다. 공정은 따라잡히고, 품질은 비슷해지며, 공급망 운영 노하우도 매뉴얼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이 바뀝니다.
“그럼 이제, 무엇으로 차별화해야 하는가?”
혁신 주도 경제는 단순히 R&D 예산을 늘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핵심은 경쟁의 기준이 바뀌는 것입니다.
가격(얼마나 싸냐) ❌
생산량(얼마나 많이 만드냐) ❌
대체 불가능성(없으면 시장이 안 돌아가느냐) ⭕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역시 국가 발전 단계를 factor-driven → efficiency-driven → innovation-driven으로 구분하며, 국가가 발전할수록 경제가 지식집약적 구조로 이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말하는 혁신이 ‘발명’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 기술의 새로운 조합
제조 + 데이터 + 서비스의 결합
제품 판매 → 구독·플랫폼·생태계 전환
즉, 혁신 주도 경제란 새 기술보다 ‘새 쓰임’이 시장의 규칙을 바꾸는 경제입니다.
혁신을 ‘한 번 터지는 성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한 번 대형 과제 성공
한 번 히트 상품
한 번 큰 투자 발표
순간은 화려하지만, 다음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벤트형 혁신은 개인의 역량, 운, 타이밍 의존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혁신이 계속 나오려면 판이 먼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예산과 제도
아이디어가 곧 실험으로 이어지는 테스트 환경
인재·데이터·파트너가 흐르는 생태계
성과가 반복 생산되는 조직 운영 방식
혁신은 불꽃놀이가 아니라, 가스레인지처럼 계속 켤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 중심 사고의 가장 큰 함정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기술)”는 설명하지만 “왜 필요한지(문제)”는 놓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술은 수단이다”라는 말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특허 개수보다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지
연구실 성과보다 사업 모델로 연결되는지
성능 자랑보다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지
이 지점에서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오래된 문제의식이 다시 중요해집니다. 국부는 자연조건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관점 말입니다.
효율 주도 단계의 성장 공식은 반복입니다.
기존 제품을 더 많이
기존 고객을 더 깊게
기존 공정을 더 효율적으로
하지만 혁신 주도 단계의 성장은 전환입니다.
제품 중심 → 서비스·구독·데이터 중심
제조 중심 → 제조 + 설계 + 소프트웨어 결합
국내 경쟁 → 표준·인증·규칙까지 포함한 글로벌 경쟁
혁신 단계에서 성장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다르게”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요소 투입으로 성장하던 경제는 임금 상승과 경쟁 심화로 한계를 맞고, 효율 주도로 확장하던 경제는 기술 평준화와 표준화로 차별이 옅어집니다. 결국 혁신 없이는 높은 임금과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혁신 주도 경제’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단계에서 국가는 더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고 독특한 제품·서비스로 경쟁해야 합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기업: 기술 로드맵보다 문제 정의–사업화–확산 구조 점검
정책: 성과 발표보다 실험·실증·실패가 축적되는 생태계 설계
조직: 결과보다 학습이 반복되는 시스템 구축
혁신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그 단계에 ‘선택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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