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셀아메리카(Sell America)입니다. 달러가 흔들리고, 미국 국채 금리가 불안정하게 움직이며, 자금이 금과 스위스프랑으로 이동한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언론에서는 “안전통화 공식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표현도 반복됩니다. 과거 위기 때마다 달러로 쏠렸던 자금이 이제는 금(Gold)과 스위스프랑(CHF)으로 이동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죠.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합니다. 셀아메리카는 단순한 달러 약세일까요? 아니면 안전통화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구조적 신호일까요?
셀아메리카는 말 그대로 미국 관련 자산의 비중을 줄이는 흐름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달러, 미국 국채, 미국 주식이 포함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미국 경제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핵심은 미국 자산에 붙어 있던 ‘안전 프리미엄’이 다시 계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초기 충격 당시 자금은 결국 달러로 몰렸습니다. 달러는 ‘위기 시 최종 피난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책 불확실성, 재정 경로 우려,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 등이 겹치면서 달러의 절대적 안전 지위가 재평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셀아메리카라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입니다.
관세·세제·대외정책이 잦은 변화를 보이면 시장은 할인율을 높입니다. 금융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자산 가치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GDP 대비 100%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확대가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달러 자산의 신뢰 프리미엄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달러의 핵심 경쟁력은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신뢰입니다. 통화정책이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다는 믿음이 달러 가치를 지탱해 왔습니다. 이 신뢰가 흔들린다고 인식되는 순간, 달러는 유동성은 유지하되 ‘절대적 안전통화’ 지위는 일부 약화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셀아메리카는 위험 회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위험 회피의 방향이 달라진 현상입니다.
자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동할 뿐입니다. 최근 부각되는 자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Gold)
스위스프랑(CHF)
일부 유럽 통화
단기 안전채권
특히 스위스프랑은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스위스는 전통적 중립국이며, 정부 부채가 GDP 대비 약 40% 내외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편입니다(스위스 연방 재무통계 기준). 장기간 저인플레이션 구조를 유지해 왔고, 취리히·제네바를 중심으로 한 금융 시스템은 글로벌 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당시 스위스프랑 강세가 반복되면서 “위기 = 스위스프랑 매수”라는 경험칙이 형성되었습니다.
즉, 안전통화는 이론이 아니라 기억으로 강화되는 것입니다.
안전통화가 되기 위한 조건은 구조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정치적 안정성과 제도 신뢰
② 재정 건전성
③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④ 중앙은행 독립성
⑤ 금융시장 규모와 유동성
⑥ 위기 시 강세 경험 축적
달러는 여전히 글로벌 결제 통화의 중심이며, 외환보유액 구성에서도 압도적 비중을 차지합니다(IMF COFER 통계 기준). 따라서 셀아메리카가 ‘달러 패권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안전 프리미엄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시대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금이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금·스위스프랑 같은 방어 자산으로 이동한다면, 신흥국 통화에는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원/달러뿐 아니라 원/엔, 원/유로 변동성이 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특히 일본과 경쟁하는 자동차·기계·부품소재 산업은 엔화 흐름이 가격 전략에 직결됩니다.
이제는 단일 통화 전망이 아니라 매출·원가 통화 매칭, 만기 분산, 통화 바스켓 전략과 같은 구조 설계가 중요합니다. 셀아메리카는 통화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체계 재점검 신호입니다.
셀아메리카는 미국 몰락의 선언이 아닙니다. 달러 패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더 현실적인 해석은 글로벌 시장이 “달러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가정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할 것입니다.
안전통화의 기준이 재정의되는 시기에는, 전망보다 구조가 중요합니다. 정치 안정, 재정 건전성, 물가 신뢰, 중앙은행 독립성, 금융시장 깊이, 그리고 위기 경험 등 여섯 가지 조건이 앞으로 통화의 운명을 가를 것입니다.
한국 기업과 투자자 역시 이 흐름을 단순한 환율 뉴스로 소비하기보다, 통화 리스크 관리 전략을 재설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시점입니다.
따라서 안전통화의 지형이 흔들릴 때, 진짜 경쟁력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된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