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갈이 2천억, 통상 리스크가 된 원산지

이설아빠의 Global Busienss Story

by 이설아빠

“관세는 라벨로 매기는 게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관세는 라벨로 매기지 않습니다. 관세는 HS 코드(품목분류), 적용 관세체계, 그리고 원산지 판정 기준(세번변경·부가가치·특정공정 등)과 증빙서류로 결정됩니다.


그런데도 라벨갈이 뉴스가 나오면, 시장도 정부도 유독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즘 원산지는 ‘정보’가 아니라 ‘비용’이고, ‘규제’이며, ‘신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1~2025년 5년간 라벨갈이 적발 규모는 1,979억 2,000만 원(144건). 이 가운데 중국산이 1,894억 1,200만 원(127건), 95.7%를 차지했습니다.


이 수치를 보고 단순히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였네”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통계를 도덕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경고등으로 읽고 싶습니다.


원산지가 돈이 되니까, 원산지를 바꾸고 싶은 유인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유인은 ‘유통 현장’에서 끝나지 않고, ‘통관·수출’로 번지는 순간부터는 사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라벨갈이가 커진 이유는 “원산지가 가격표가 되었기 때문”


라벨갈이는 기술적으로 복잡한 범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위험합니다.

외국산을 싸게 들여온다

표시(라벨)를 바꾼다

국산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다


이 구조가 성립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국산’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품질·AS·안전성의 기대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라벨은 종잇조각이 아니라 신뢰를 환산하는 표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서 한 단계가 더 올라갔습니다. 원산지가 단지 “어디서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어떤 규제를 더 맞아야 하는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었습니다.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면 고율 관세가 붙고, 무역구제가 강화되고, 공급망 규제가 확장될수록 기업 입장에서 원산지는 원가 구조 그 자체가 됩니다. 즉, 원산지가 바뀌면 관세가 바뀌고, 통관이 느려질 수 있고, 시장 접근성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라벨갈이는 단순한 소비자 기만을 넘어, 원산지 신뢰 체계를 흔드는 행위가 됩니다.


“95%가 중국산”을 국가 탓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통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적발 금액의 95.7%가 중국산.”


강렬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를 ‘국가’로만 읽으면 구조를 놓칩니다. 여기서 더 정확한 해석은 이쪽입니다.


“물량이 큰 곳에서 위반의 절대 규모도 커진다.”


한국의 소비재·생활용품·부품 유통 구조에서 중국산 비중이 큰 영역일수록, 라벨갈이 역시 규모가 커지기 쉬운 환경입니다. 즉, 핵심은 “중국산이라서”라기보다, 원산지가 프리미엄이자 비용이 되는 시장 구조입니다. 원산지를 바꿨을 때 얻는 이익이 크다면, 누군가는 그 유혹을 계산합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도덕이 아니라 정책입니다.


“위반이 경제적으로 계산이 안 나오게 만들고 있는가?”


대외무역법의 원산지, ‘표시(라벨)’의 질서


여기서 많은 분들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대외무역법이랑 관세법 원산지 기준이 다른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같은 ‘원산지’라는 단어를 쓰지만, 애초에 설계 목적이 다릅니다. 대외무역법 체계에서 원산지는 기본적으로 표시(라벨)의 문제입니다.

소비자가 속지 않게

허위 표시를 막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지키는 것


라벨갈이 사건은 대체로 이 영역에서 시작합니다. 라벨을 바꿔치기하는 순간,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너지고, 정상 기업이 역차별을 받습니다.


관세법(및 FTA)의 원산지, ‘관세·특혜’를 판정하는 규칙


반면 관세법상 원산지는 ‘표시’가 아니라 세율 적용을 위한 기준입니다.

기본관세(MFN) 적용

FTA 특혜관세 적용 여부

무역구제(반덤핑·상계관세 등) 적용 가능성


여기서 중요한 건 라벨이 아니라,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했는지입니다. 세번변경(CTC)인지, 부가가치(RVC)인지, 특정공정이 수행됐는지, 그리고 그걸 증명할 서류가 있는지. 즉,

대외무역법의 원산지 = “라벨이 맞는가”

관세법/FTA의 원산지 = “요건을 충족했는가”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장에서 위험한 착각이 생깁니다.


“라벨만 바꾸면 끝 아닌가?”


그 다음 단계에서 더 위험한 유혹이 뒤따릅니다.


“서류도 그에 맞게 맞추면 되지 않나?”


이 순간부터 라벨갈이는 유통 사건을 넘어, 통관·수출 단계의 원산지 허위신고 리스크로 바뀝니다. 그리고 개별 업체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 신뢰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


숫자가 던지는 질문, 억지력은 “적발 확률 × 제재 수준”


보도에 따르면 같은 기간 과징금 6억 5,700만 원(62건), 수입금액 기준 53억 3,900만 원 규모의 시정명령도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합니다. 적발 금액과 과징금은 산정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책적으로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위반으로 얻는 기대이익보다, 적발 시 기대비용이 충분히 큰가?”


억지력은 보통 "억지력 = 적발 확률 × 제재 수준" 이렇게 작동합니다. 단속 건수만 늘려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목표는 하나입니다. 위반이 ‘경제적으로’ 계산이 안 나오게 만드는 것이죠.


라벨갈이는 ‘유통 사건’이 아니라 ‘통상 역량’의 시험지다


정리하면, 라벨갈이는 단순 상거래 위반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산지가 관세·규제·신뢰를 동시에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라벨갈이는 ‘유통 사건’을 넘어, 한국 기업의 공급망 관리 수준과 통상 대응 역량을 점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됩니다.


기업이 지금 점검해야 할 포인트는 현실적으로 세 가지입니다.


① BOM(자재명세) 기반 원산지 추적 체계

원재료 거래명세, 공정 외주 계약, 부가가치 산출 근거까지 “나중에 입증 가능한 형태”로 묶어두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② 후공정(리패킹·라벨링·위탁 포장) 관리 강화

라벨갈이는 생산라인보다 “마지막 손이 닿는 구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 범위를 끝단까지 넓혀야 합니다.


③ 수출기업은 우회 의심 가능성을 사전 제거

C/O 발급 요건, HS 코드, RVC 근거를 체크리스트로 고정하고 내부 통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관세는 라벨로 매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라벨갈이가 위험한 이유는, 라벨이 원산지 신뢰 체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산지 신뢰가 흔들리면, 비용은 관세보다 더 크게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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