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서울과 수도권에 쏠린 자원을 지방으로 분산시키자는 ‘지역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오랜 과제다. 국가의 절반 이상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경제력의 70% 이상이 서울과 그 인근에 몰려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구조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금, 균형발전은 단순한 형평성 문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국가 운영을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전략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다. “국토 면적이 좁고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 모든 지역에 자원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 정말 효과적인 방식일까? 오히려 핵심 역량을 분산시키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담론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의 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의 집중 현상을 완화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수도권에 몰린 인구와 산업,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고, 지역 인프라를 균형 있게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의 방식’이다.
균형발전이 어느 순간부터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나눠주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수요와 효율을 고려하지 않은 인프라 배분이 늘어났다. 수요가 거의 없는 지역에 공항이나 산업단지, 창업센터를 짓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로 인하여 공공기관 이전 후에도 핵심 기능은 서울에 남아 ‘껍데기 이전’이라는 비판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자원은 분산되었고, 그 분산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략은 광역 단위의 중핵도시, 예를 들어 천안, 창원, 전주 등 거점 도시로서의 성장 기회를 앗아갔다. 자원이 한정되고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 도시는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기초지자체까지 형평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원이 나뉘며 ‘균형적 쇠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인프라는 깔렸지만, 인구와 산업이 따라오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은 커녕 유지조차 힘든 구조가 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제 추구해야 할 지역균형발전 전략은 명확하다. ‘전국적으로 고르게’에서 ‘효율적으로 제대로’로의 전환이다. 공공기관이나 시설이 지역에 간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고, 인구와 산업 역량이 남아 있는 광역 단위의 거점도시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 도시를 통해 주변 지역으로 고용, 교육, 소비 등 파급효과가 확산되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거점도시 성장모델(Growth Pole Theory)’이라고 불리는 경제지리학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하나의 도시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그 도시를 기반으로 주변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구조다. 일본은 후쿠오카와 센다이, 프랑스는 리옹과 마르세유를 중핵 도시로 키워 수도권의 과밀을 줄이고 다핵 국가 구조를 정착시켰다.
이에 더해 ‘전략적 축소 관리’ 개념도 필요하다. 인구 소멸이 임박한 농산어촌이나 일부 도서 지역은 무리하게 개발을 추진하기보다, 의료와 교통, 돌봄과 같은 필수 복지를 중심으로 삶의 질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역 연고자원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이는 지역을 ‘살리는’ 것이라기보다 ‘지키는’ 전략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도권 과밀 현상을 줄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 계기는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정부 기관 이전은 잘 설계되었지만, 완전한 행정수도로 자리잡는 데에는 여전히 정치적, 행정적 한계가 존재한다. 만약 이 계획이라도 제대로 실행되었더라면, 지금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한층 완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기회만을 아쉬워할 수는 없다. 이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모든 지역에 똑같이 나눠주기보다, 제대로 키워야 한다. 더 이상 ‘고르게 퍼뜨리기’가 아닌,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수도권 과밀도, 지방 소멸도 아닌, 건강한 다핵 구조의 국가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은 지방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