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중소기업을 열정적으로 지원하는 나라다.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까지 수많은 기관이 매년 수조 원 규모의 예산을 창업, 연구개발, 수출, 고용 등 다양한 영역에 투입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위한 육성 프로그램부터 고용 인건비 지원, 바우처 제도까지, 직접적인 지원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환경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글로벌 중소기업, 이른바 ‘강소기업’은 많지 않다.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하지만, 그 지원이 끊기면 스스로 생존하기 어려운 기업이 부지기수다. 이는 단순히 예산이 적거나 프로그램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기대하며’ 정책을 설계하고 있는가에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직접 지원’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현금성 보조금, 저리 융자, 바우처 제공, 인건비 지원 등은 단기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가 장기화되면 ‘성장의 사다리’가 아니라 ‘의존의 울타리’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직접 지원 방식이 지나치게 단기성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매년 수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과 평가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당장의 매출, 수출 실적, 고용 인원 등의 정량적 수치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기술 개발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산업마다 성과를 내는 주기가 다르다. 소재·부품 기업은 검증 과정만도 수년이 걸리고, 바이오 기업은 수익화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업들에 1년 단위의 실적 기준을 요구한다면, 자연스럽게 탈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뛰어난 계획서와 발표 능력만으로도 계속 선정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실질적으로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배제되는 기업이 나타난다. 정량 중심의 평가가 불러온 구조적 비효율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이 나오기 어렵고, 정부 지원이 생존 수단이 된 ‘좀비기업’을 양산할 우려가 커진다.
정부는 ‘성과 중심’이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과는 지나치게 단기적이고 수치 중심적이다. 물론 기업의 수익 창출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특히, 초기 기업이나 고위험 R&D 분야에서 실적은 더디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단기적 성과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는 결국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정성적 평가’다. 기업의 비전, 기술 잠재력, 시장 가능성, 창의성 등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접근이다. 그러나 정성적 평가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누가 평가하느냐’가 핵심이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평가자가 문서상 수치나 프레젠테이션 스킬에만 의존할 경우, 정성적 평가는 오히려 더 큰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산업별 전문가 풀을 확대하고, 평가자 역량을 지속적으로 검증·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책의 질은 평가자의 안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가 단순히 자금을 나눠주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도전하기 힘든 고위험 과제, 예컨대 미래 신산업이나 원천 기술 R&D 분야에 보다 과감히 개입하고,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하지 못할 리스크를 정부가 대신 떠안고, 기업에게는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력없는 기업이 도태되는 과정을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 경쟁은 경제의 본질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안전한 정부’가 아니라, 실패도 받아들이는 ‘유연한 정부’다.
지금 대한민국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딜레마는 단순히 예산의 문제나 제도의 유무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방향의 문제이고, 철학의 문제다.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어떤 도전을 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정부는 이제 ‘많이 주는 정부’에서 ‘잘 키우는 정부’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정부’에서 ‘실패를 존중하는 정부’로 변화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율적으로 전략을 설계하고, 정부 지원이 아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한다.
결국, 좋은 정책이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잘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중소기업 중심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철학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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