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덫을 넘어서
“대표님, 환율이 이대로 계속 떨어지면은... 이번 계약 건은 사실상 손해로 돌아설 수도 있어요.”
한국으로 귀국한 지 며칠되지 않아, 도현은 사무실 한편에 있는 회의실에서 팀원들과 함께 환율 급락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고, 효진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원가는 1세트 기준으로 이렇고, 환율이 1,400원이면...”
기석이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환차손으로 현 수익률은 예상했던 수치보다 6~7% 낮아졌습니다. 여기에서 환율이 더 떨어지면, 기존에 예상했던 수익보다 많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계약 조건을 바꿔야 하는 건가요?”
도현이 고개를 저으려던 순간, 기석이 먼저 말했다.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미 계약은 체결됐고, 상대는 우리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번 거래로 인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비즈니스 신용을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환율은 계속 변동합니다. 꾸준히 수출하다 보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평균에 수렴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희 같이 처음 수출하는 기업에겐 확실히 부담입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효진은 입을 열었다.
“저, 한 선생님, 그렇다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리고 도현도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때 기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환율 리스크는 수출 기업에게 항상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석은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환리스크 관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시작했다. 도현을 비롯한 뷰티스타 코스메틱 직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수출 기업으로서 환율 변동은 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기석이 화이트보드에 ‘대내적 관리기법’과 ‘대외적 관리기법’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먼저 대내적 관리기법입니다. 대표적으로 매칭(matching)이 있습니다. 매칭은 외화의 수입과 지출 시기를 맞춰서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의 타이밍을 맞추는 겁니다.”
도현이 메모하며 질문했다.
“쉽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수입과 지출 시기를 정확히 맞추는 게 가능한가요?”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지적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 리딩(leading)과 래깅(lagging) 전략이 있습니다. 환율 변동 추이에 따라 결제 시기를 앞당기거나 미루는 겁니다. 환율이 오를 것 같으면 앞당기고, 떨어질 것 같으면 미루는 식입니다.”
유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방법도 시장 상황을 정확히 예측해야겠네요.”
기석은 미소 지으며 다음 항목을 설명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보완적인 방법으로 네팅(netting)이 있습니다. 같은 통화로 채권과 채무가 있으면 서로 상쇄하는 방법으로 순 노출 금액을 관리하는 겁니다. 특히 여러 거래처와 거래할 때 효과적입니다.”
효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근데 대내적 관리기법 중 마지막에 적혀있는 있는 가격 정책은 무엇인가요?”
“가격 정책(price variation policy)은 환율 변동에 따라 수출과 수입 가격을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환율 손실을 줄이기 위해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가격을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전략입니다. 이 외에도 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기업 전체의 자산과 부채를 관리하는 자산부채종합관리(ALM), 다양한 외화 자산과 부채를 구성하는 포트폴리오 전략 등이 있습니다.”
기석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은 대외적 관리기법입니다. 가장 먼저 선물환 거래(forward exchange transaction)가 있습니다. 선물환 거래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특정 환율로 외환을 매매하기로 미리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환율 변동 위험을 사전에 확정할 수 있어 많이 쓰이는 방법입니다.”
기석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통화옵션(currency option)은 특정 환율로 통화를 살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계약한 환율이 불리해지면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옵션 프리미엄이라는 수수료가 따로 들어갑니다.”
도현이 기석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그럼 통화스왑은 어떤 방식인가요?”
“통화스왑(currency swap)은 두 통화를 일정 기간 동안 서로 교환하여 사용하고, 계약 만기 시 다시 원금을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주로 자금 조달이나 환율 위험을 관리하는 데 쓰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규모가 크고 장기적 거래에 더 적합합니다.”
기석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설명을 이었다.
“역외 선물환이라는 방식도 있습니다. 흔히, NDF라고도 합니다. 해외에서 제한적인 통화, 예를 들어 원화 같은 통화를 대상으로 하는 거래로 실제 통화를 주고받지 않고 만기 시 계약된 환율과 시장 환율의 차액만을 결제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통화 거래가 제한된 나라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앞서 설명한 환리스크 관리 전략은 우리가 쓰기에도 적합한가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도현의 질문에 기석은 잠시 고민한 뒤 솔직하게 답했다.
“이 방법들은 대부분 큰 규모의 거래나 자금력이 충분한 기업에 적합합니다. 특히 통화 옵션이나 통화 스왑 같은 경우는 금융에 대한 이해도와 충분한 자금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석은 화이트보드에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일정 수수료만 내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간단하고 비용도 예측 가능합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리한 선택입니다.”
효진과 유리는 생소한 보험 상품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혼란스러워했다. 도현도 처음 들어본 용어였다.
“환변동보험이라면, 환율을 고정하는 상품인가요?”
“네, 정확히는 특정 환율을 미리 정하고, 미래의 환율 변동 리스크를 관리하는 상품입니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선물환 계약이나 환율 옵션 같은 금융상품보다 더 적합합니다.”
도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일단 진행해 봅시다. 이번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번엔 더 준비된 상태로 거래를 진행하도록 하죠.”
기석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결정을 하신 것만으로도 이미 다음 단계로 가고 계신 겁니다.”
효진은 곧바로 한국무역보험공사에 전화를 걸어 실무자와의 상담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도현과 효진은 즉시 한국무역보험공사 사무실을 찾았다. 정돈된 사무실과 실무자의 차분한 안내 덕분에 긴장은 조금 풀리는 듯했다. 실무자는 친절하게 환변동보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환변동보험은 간단히 말해 계약 시점에서 환율을 미리 정하고, 나중에 실제 거래가 이루어질 때 그 정해진 환율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계약 당시 환율이 1유로에 1,300원이라면 나중에 실제 거래 시 환율이 떨어져도 우리는 1,300원으로 고정된 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효진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환율이 올라가면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정된 환율을 적용받아 손해가 발생하는 건가요?”
실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맞습니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보험의 핵심은 환율이 내려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손실을 미리 방어하는 데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수출 기업들이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환변동보험을 적극 활용합니다. 환율 상승 시 이익은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현이 신중한 목소리로 비용에 대해 물었다.
“수수료 부담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 같은 스타트업에 부담이 클까 봐서요.”
실무자는 자세히 설명하며 자료를 보여주었다.
“수수료는 보통 계약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연간 6개월 기준으로 대체로 0.02 ~ 0.03% 수준이며,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추가 할인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래 규모나 기간, 환율의 변동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효진은 설명을 듣자마자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큰 금액은 아닐 수 있지만, 자금이 풍족하지 않은 중소기업에겐 이마저도 만만치는 않은 숫자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도현과 효진은 수수료 때문에 고민하였다. 그러나 기석이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당장은 수수료가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변동성이 높은 시기엔 보험만이 유일한 안전장치입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무역보험공사 실무자에게 계약 진행 의사를 밝히고 다시 한번 절차를 안내받았다. 낯선 서류와 복잡한 절차에 처음엔 다들 혼란스러웠지만, 하나씩 배우며 계약서를 채워 나갔다. 계약서에 최종 서명하는 순간, 도현은 잠시 펜을 멈추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단순히 숫자를 지키는 일이 아니야. 숫자보다 더 중요한, 비즈니스 신뢰와 미래를 지키는 일이야. 이걸 잘 견디면 우리는 진정한 수출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야.'
계약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도현은 문득 마티유 드랑에게 연락해 물류 조건이나 단가 조정을 요청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전에 기석이 도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표님, 계약은 계약입니다. 첫 거래에서 약속을 변경하면 다음 거래는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바이어와 신뢰를 쌓을 때입니다. 현재는 마티유 드랑과 장기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며칠 뒤, 환변동보험 가입이 최종 완료되었다. 환율은 더 하락하였지만 팀원들은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도현은 팀 회의를 소집하고 환율 위기 대응책을 최종 보고했다.
“이제 우리는 환율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방어선을 구축했어요. 수출은 단순히 해외로 물건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이런 위험을 관리하며 계속 앞으로 나가는 일이니까요.”
팀원들은 도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수출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 이제 정말 제대로 된 수출 기업이 되는 겁니다.”
도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다. 팀원들의 마음속에선 새로운 목표와 다짐이 더욱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 1부 끝. 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2부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