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9화

소규모지만, 괜찮아! 첫 수출 계약!

by 이설아빠

파리 전시회 폐막 다음 날 아침,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도현과 기석은 호텔 로비 라운지에 있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오후 1시, 마티유 드랑의 사무실에 들러, 초도 주문 물량에 대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로 하였다. 이에 앞서, 기석과 함께 계약서를 최종 점검하는 중이었다. 도현이 계약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기석이 조용히 손바닥을 펼치며 그를 멈춰 세웠다.

“대표님, 서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긴장한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석을 바라봤다. 마티유 드랑과 만나기 전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기석은 노트북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출 계약은 단순한 ‘제품 판매’ 계약이 아닙니다. 제품보다 계약이 더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초도 물량 거래에서는, 몇 가지 핵심 조항만 잘 챙겨도 큰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도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첫째, 무역 조건, 즉 인코텀즈. 지금 계약서는 ‘CIF Port of Le Havre’로 되어 있습니다. 운송비와 보험은 우리가 부담하고, 바이어는 Port of Le Havre에서부터 책임지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이 바뀌면 비용 구조와 책임 범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반드시 인터콤즈 기준으로 계약 조항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최신 버전을 활용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버전을 꼭 명시하셔야 합니다. 같은 조건인데 버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기석은 이어 말했다.

“둘째는 결제 조건입니다. 다행히 이번 계약은 T/T 선불 조건이지만, 바이어가 추후에 L/C로 바꾸자고 하면, 그땐 신용도 평가와 수수료 조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셋째는 품질 조건과 불량 처리 조항입니다. 바이어가 샘플을 테스트한 뒤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될 경우,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곧바로 클레임이 들어옵니다. 제품 스펙, 허용 불량률, 검사 방법까지 지금 이 계약서에 전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는 납기일과 지체 배상. ‘언제까지 납품’이 아니라, ‘어디에 언제까지 도착’으로 명확히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일정 지연 시 책임 범위도 협의해야 합니다. 이번 건은 수량이 적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정식 오더로 넘어가면 반드시 챙겨야 할 부분입니다.”

도현은 메모를 하며 신중히 묻는다.

“그럼 만약에 분쟁이 생기면 어디서 해결하면 되나요?”

기석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게 다섯 번째 항목, 관할 법률과 분쟁 해결 방식입니다. 지금 계약서는 ‘프랑스 상법에 따라, ICC 국제중재 규칙에 따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쁘진 않지만, 다음엔 우리에게 조금 더 유리한 조건도 협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도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자신은 이제껏 계약서를 단순히 ‘가격과 수량’만 보는 수준으로만 접근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석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대표님, 계약이란 건 신뢰를 문서로 증명하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그 신뢰가 깨졌을 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번 계약 금액은 적지만, 우리가 해외로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더더욱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도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꼼꼼히 보고 서명하겠습니다.”


도현과 기석은 호텔 로비에서 마지막으로 계약서를 검토한 뒤, 예약해 둔 택시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흐릿한 파리 아침 햇살이 스쳐 지나갔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그러나 오늘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마음속에 하나의 목표가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20여 분 후, 차량은 파리 외곽에 위치한 마티유 드랑이 일하는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유럽식 석조건물 외벽과 세련된 간판, 그리고 깔끔한 입구가 첫인상부터 신뢰감을 주었다. 도현은 가방 안쪽에서 계약 서류 폴더를 꺼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준비하신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바이어는 이미 대표님의 진심을 확인했습니다.”

기석이 차분히 말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곧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이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Mr. Kim, Mr. Han, please follow me. Mr. Bernard and Mr. Drang are expecting you.”

(김 대표님, 그리고 한 선생님,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베르나르씨와 드랑씨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은 조용하고 아담한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천장은 높았고, 창밖으론 이른 봄빛이 스며들었다. 회의실 테이블 맞은편엔 마티유 드랑과 장 베르나르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Mr. Kim, Mr. Han, glad you could make it. Please, have seats.”

(김 대표님, 한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장 베르나르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했다. 도현과 기석이 자리에 앉자, 잠시 후 차와 다과가 준비되었다. 도현은 준비해 온 서류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쳤다.

“Before we proceed, I just want to clarify once more. This order is for 500 units, delivered CIF Le Havre, including standard insurance and export packaging. Payment will be made in Euros by T/T 30 days after delivery confirmation, correct?”

(진행에 앞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문은 500개이며, 인코텀즈 CIF 조건으로 르아브르 항구까지 배송, 표준 보험 및 수출 포장 포함입니다. 결제는 유로화 기준, 납품 확인 후 30일 이내 T/T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습니까?)

도현이 정중하게 되묻자, 장 베르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That’s right. CIF Le Havre, Incoterms 2020 standard. And we expect to receive the goods within six weeks. We’ll begin testing immediately upon arrival.”

(맞습니다. 르아브르 도착 기준 CIF 조건이며, 인코텀즈 2020 기준을 따릅니다. 물품은 6주 이내에 수령하기를 예상하고 있으며, 도착 즉시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기석이 옆에서 덧붙였다.

“We’ve also included a detailed product specification sheet and the CPNP registration certificate as annexes. And we’ve arranged for SGS inspection prior to shipment.”

(제품 사양서와 CPNP 등록 인증서는 부속 문서로 포함했으며, 선적 전 SGS 검수도 사전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Excellent. Having the Certificate of Origin for FTA benefits will certainly help us manage import duties and provide a more competitive pricing structure. This gives us even greater confidence in our collaboration.”

(훌륭합니다. FTA 혜택을 위한 원산지 증명서까지 확보된다면, 저희가 수입 관세를 관리하고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 구조를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협력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지네요.)

마티유 드랑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의 마지막 장. 도현은 펜을 들고 서명란 앞에서 잠시 손을 멈췄다. 그 순간, 도현의 눈앞에는 한국에서 마티유 드랑을 처음 만났던 순간과 저녁 식사 자리, 파리 야경 속에서 지우와 나누었던 대화, 효진이 급하게 만든 홍보 영상, 그리고 지우의 부스 레이아웃 조언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잉크가 조금 묻어날 정도로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썼다.

"김도현"

그 아래, 흐릿하지만 분명한 각인처럼 느껴지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수출 기업'

장 베르나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Welcome to Europe, Mr. Kim. And good luck with your first step. Sometimes, small tests open big doors.”

(유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김 대표님. 그리고 첫걸음에 행운을 빕니다. 때로는 작은 테스트가 큰 기회의 문을 여니까요.)

마티유 드랑도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Your product didn’t just sell itself. Your story sold it. Remember that.”

(당신의 제품이 저절로 팔린 게 아닙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그 제품을 팔았습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악수를 주고받는 그 순간, 도현의 손끝엔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스며들었다. 긴장과 뿌듯함, 기대와 책임. 그의 시선은 계약서 위에 멈췄다.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서명 아래, 희미하게나마 ‘다음 단계’로의 윤곽이 떠오르고 있었다.


“대표님, 우리 이제 진짜 수출 기업이 된 거죠?”

카페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들던 햇살을 등지고, 효진이 조용히 말했다. 말끝은 떨렸고, 눈가에는 잔잔한 물기가 맺혀 있었다. 도현은 포크를 내려놓고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분명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도현은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으며 잔을 들었다.

“자, 우리의 첫 계약을 위해. 그리고, 여기까지 함께 온 우리 모두를 위해.”

프랑스 파리의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레스토랑. 따스한 조명 아래 정갈하게 놓인 현지식 식사, 그리고 조촐하지만 진심이 담긴 건배. 와인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투명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선 같은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도, 환희, 책임.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진심으로 즐겨도 되는 거죠?”

효진이 천천히 잔을 들며 말했다. 식사가 무르익고, 효진이 디저트로 나온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조심스럽게 떠먹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이 아이스크림, 진짜 달게 느껴져요. 오늘은 뭔가 모든 게 달게 느껴지는 날이에요!”

그러나 그 순간, 기석은 손에 쥐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도현도 자연스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대표님, 그리고 효진 씨.”

기석이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입니다. 첫 수출 계약, 이건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식탁에 놓인 계약서 원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합니다. 수출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기석에게 집중되었다.

“진짜 수출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선적 이후의 배송, 통관, 현지 반응, 클레임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 거래’까지. 단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은 출발선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그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입니다.”

잠시 식탁 위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 정적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각자의 마음에 스며드는 다짐과 결심의 순간이었다. 도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잔을 들고, 잔 속 붉은 빛을 천천히 굴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 출발선이, 지금처럼 따뜻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한국으로 귀국한 뒤, 휴식도 잠시, 곧바로 초도 물량 생산과 물류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패킹 단위와 포장재 디자인을 최종적으로 점검했고, 유리는 원부자재 재고를 재정비했다. 그러던 오후, 효진이 사무실 한편에서 갑자기 외쳤다.

“대표님! 큰일이에요. 환율이… 원/유로가 한 주 만에 거의 100원 이상 떨어졌어요! 기사에 따르면 미국 달러의 가치 상승 영향이라고 하네요. 앞으로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도현은 곧바로 달려와 효진의 화면을 들여다봤다. 최근 1,500원대였던 환율이, 1,400원 초반으로 급락한 상황이었다. 예상했던 수익 구조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가면… 초도 계약에 대한 마진을 거의 못 남길 수도 있어요.”

도현은 팀원들을 긴급 소집했다. 사무실 한가운데 화이트보드를 펼치고, 단가 구조를 다시 점검했다.


< 계속 >

keyword
이전 18화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