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하라다의 방문
화요일 오전, 뷰티스타 사무실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했다.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 오늘은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도현은 서둘러 셔츠를 깔끔하게 다려 입고, 회의실 세팅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점검했다. 테이블 중앙에는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대표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옆에는 영어와 독일어로 준비된 회사 소개 자료와 인증서 사본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표님, 커피랑 다과 준비 완료했습니다."
효진이 작은 속삭임으로 보고했다.
"좋습니다. 조용히 기다려 보죠."
도현은 심호흡을 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느리게 흘렀다. 도현은 미리 마중을 나가고 싶었으나, 한사코 거절한 미나 하라다였다. 10시 정각, 초인종이 울리고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도현은 짧게 숨을 들이쉬고, 급히 문 앞으로 뛰어가 미나 하라다를 맞이하였다.
"Welcome, Ms. Harada."
(어서 오세요, 하라다 씨.)
문 앞에는 정장 차림을 한 작은 체구의 여성이 서 있었다. 검은색 슈트에 간결한 베이지 스카프,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 파리에서 봤던 미나 하라다였다.
"Nice to meet you, Mr. Kim. Thank you for having me today."
(반갑습니다, 김 대표님.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나 하라다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It's my honor to have you here. Please, this way."
(귀한 걸음 감사드립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도현은 약간 몸을 숙여 인사하며 길을 터주었고 회의실로 안내하였다. 미나 하라다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눈은 이미 사무실 구석구석을 스캔하고 있었다. 회의실, 미나 하라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준비된 샘플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The packaging quality is excellent."
(포장 품질이 훌륭하네요.)
그녀는 짧게 평가했다. 도현은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효진과 유리도 살짝 안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질문은 단호했다.
"Could you please explain the current status of CPNP registration and any quality claims in the past year?"
(현재 CPNP 등록 현황과 지난 1년간 품질 관련 클레임 발생 여부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도현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재빨리 건넸다.
"Yes, Ms. Harada. We have completed CPNP registration for four product lines, and over the past year, we received two minor claims, all of which were resolved promptly."
(네, 하라다 씨. 현재 네 개 제품 라인에 대한 CPNP 등록을 완료하였고, 지난 1년간 경미한 클레임이 두 건 있었으나 모두 신속히 대응하여 조치 완료하였습니다.)
미나 하라다는 자료를 넘기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And your supply chain, how do you manage supplier risks?"
(그리고 공급망은 어떻습니까? 공급업체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가요?)
도현은 준비된 대답을 이어갔다. 주요 원재료 공급사는 국내 업체 위주이며, 현재 재고 확보율은 3개월분.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체 공급처 확보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나 하라다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Do you have the list of alternative suppliers right now?"
(현재 시점에서 대체 공급업체 목록을 보유하고 있을까요?)
도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 정리 중이긴 했지만, 아직 완성된 리스트는 없었다.
"We are currently reviewing our alternative supplier options internally. We will confirm the finalized list."
(현재 대체 공급업체 후보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 있으며, 조만간 확정할 예정입니다.)
"Understood."
(알겠습니다.)
미나 하라다는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짧지만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동안, 회의실 공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효진은 옆에서 손에 땀을 쥐었고, 유리는 몰래 숨을 고르며 긴장을 풀기 위하여 애썼다. 그리고 드디어, 미나 하라다가 결론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Your products are highly attractive. However, your distribution channel management, claim handling protocols, and supply chain risk controls are relatively weak."
(귀사의 제품 경쟁력은 인상적입니다. 다만 유통망 운영, 클레임 대응 체계, 그리고 공급망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짧지만 명확한 진단이었다.
"At this stage, working with major distributors could be quite risky."
(이 시점에서 주요 유통사와의 협력은 위험 요소가 적지 않을 수 있어요.)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도현도, 효진도, 유리도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도현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
"We fully understand, Ms. Harada. We are committed to strengthening these areas quickly and aligning with your expectations."
(말씀 주신 사항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관련 분야를 신속히 보완하여 미나 하라다 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나 하라다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은 길었다. 그리고 마지막. 모든 질문과 답변이 끝난 후, 미나 하라다는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If we place an initial order that is significantly larger than expected, would you be able to handle that volume?"
(초기 발주 규모가 예상치를 크게 상회할 경우에도, 해당 물량을 소화하실 수 있을까요?)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도현은 아주 짧은 망설임 끝에, 단호하게 답했다.
"Yes, we are fully capable of handling large volumes."
(네, 대량 주문 처리에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순간, 놀란 기석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 도현을 쳐다봤다. 도현의 눈빛에도 말로 다 하지 못한 불안이 스쳤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미나 하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Mr. Kim, would it be possible to visit your manufacturing partner today?"
(김 대표님, 혹시 오늘 귀사의 생산 파트너 업체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도현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다행히 OEM 공장이라면 파주 쪽이 가장 준비가 잘 되어 있었고, 어제 미리 준비 요청을 해놓은 상황이었다.
"Of course, Ms. Harada. We can arrange a visit to our partner factory in Paju. It's about an hour's drive from here."
(물론입니다, 하라다 씨. 파주에 있는 저희 협력 공장 방문을 바로 조율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That would be great. I believe seeing the production site will give me better insights."
(좋습니다. 생산 현장을 직접 보면 보다 명확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현은 기석과 눈빛을 교환했다. 기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lease give us a moment to prepare. We'll depart shortly."
(준비할 시간이 잠시 필요합니다. 금방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30분 뒤. 도현, 기석, 미나 하라다는 함께 차를 타고 파주 공장으로 향했다. 봄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도현은 속으로 여러 가지를 계산했다.
'생산라인 상태는 괜찮을 거야. 정리도 잘해 놓았을 거고... 문제는 물량 대응이겠지.'
파주 소재 OEM 공장. 공장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세 사람은 생산 라인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라인, 자동화 설비, 직원들의 부지런한 움직임. 미나 하라다는 꼼꼼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자세히 살폈다.
"This facility looks very organized and clean. I'm very impressed."
(시설이 체계적으로 잘 관리되고 매우 청결하군요. 매우 인상적이네요.)
도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Thank you, Ms. Harada. This facility maintains strict quality control standards."
(감사합니다, 하라다 씨. 이 시설은 엄격한 품질 관리 기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나 하라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If I were to place an initial order of, say, 50,000 units per SKU in two weeks, would you be able to fulfill the order on time?"
(만약 2주 이내에 SKU당 5만 개 수준의 초기 주문을 드린다면, 귀사에서 해당 물량을 기한 내에 납품하실 수 있을까요?)
회의실 안에서 들었던 질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무거운 질문이었다. 도현은 눈을 깜박였다. 기석은 숨을 멈춘 듯 굳어 있었다. 도현은 아주 짧은 망설임 끝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Yes, Ms. Harada. We are fully capable of handling that volume."
(네, 하라다 님. 해당 물량은 충분히 대응 가능합니다.)
도현의 대답은 단호했다. OEM 공장 안의 공기가 잠시 얼어붙었다. 그 순간, 미나 하라다는 조용히 도현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이었다. 단 몇 초, 그러나 그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치 그의 대답 너머, 숨기고 싶은 불안이나 망설임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하였다. 미나 하라다는 예리한 눈빛으로 도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도현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떨리는 얼굴 근육 하나까지 흔들리지 않게 보이도록 애써 자신을 다잡았다. 미나 하라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긴장감이 아주 조금 풀렸다.
"Very well. I will trust your word."
(그 말씀을 신뢰하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미나 하라다의 짧고 단단한 말이 이어졌다.
'가능하긴커녕... 지금 OEM 생산 라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기석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공식 자리에서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기석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굳은 표정은 감춰지지 않았다. OEM 공장 투어가 끝나고, 미나 하라다는 간단히 정리된 말을 남겼다.
"Thank you for showing me around today. I will review everything carefully and contact you soon."
(오늘 시설을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사항을 신중히 검토한 후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Thank you, Ms. Harada. We look forward to working with you."
(감사합니다, 하라다 씨.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미나 하라다가 떠난 뒤, 도현과 기석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현은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웃었지만, 기석의 눈빛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기석이 도현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기석이 조용히 도현을 불렀다.
"네?"
"아까 약속하신 대량 생산 대응...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도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되죠. 우리에겐 두 번 다시없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기석은 아무 말 없이 도현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떨구었다.
"대표님. 신뢰는, 한번 잃으면 다시 쌓기 힘듭니다."
도현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오후, 사무실은 조용히 평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미나 하라다의 방문이 남긴 긴장감과, 도현의 약속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모두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늦은 저녁, 도현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잔잔히 퍼지는 봄 햇살 속에서, 그는 중얼거렸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 아니야. 반드시... 내가 해낼 거야. 그리고 증명할 거야.'
그러나 어쩐지, 그 다짐은 평소보다 더 공허하게 들렸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