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상법개정안은 지난 2년간 연속적으로 통과되며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큰 틀을 바꾸고 있다.
1차 개정안(2025년 7월):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3%룰 강화, 전자주총 의무화
2차 개정안(2025년 8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이 개정들은 공통적으로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투명성 강화라는 목표를 담고 있다. 덕분에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대하지만, 기업은 경영권 약화와 혁신 활동 제약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논점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닌, “신뢰 vs 혁신” 그리고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모아진다.
상법개정안의 가장 큰 성과는 소액주주 권익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전자주총 의무화 같은 제도는 그동안 대주주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업 의사결정 구조에 소액주주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제 소수 지분을 가진 주주라 하더라도 이사 선임이나 감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기존의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된 점도 중요한 변화다. 이는 경영진이 단순히 기업 운영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경영진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제약되고,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저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해온 ‘지배구조 불투명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자본시장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고, 이는 투자 확대와 밸류에이션 개선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신뢰 확보는 단기적 비용을 넘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저평가 문제,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경영 자율성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된다. 혁신적 프로젝트, 대규모 R&D 투자, 글로벌 M&A 같은 과감한 의사결정은 본질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런데 소액주주의 권한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소송 리스크까지 커진다면, 경영진은 장기 성장 전략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주주들은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처럼 즉각적인 주가 부양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압력이 커질수록 기업은 장기적인 혁신보다는 단기적인 재무 성과를 맞추는 데 집중하게 되고, 이는 신성장 동력 발굴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혁신적 투자를 주저하고 보수적인 경영을 이어온 역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법개정안으로 경영권 제약이 강화된다면, 한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결정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자율성이 줄어들면 혁신이 제한되고, 한국 경제의 장기 경쟁력 확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상법개정안의 방향성 자체에는 이견이 크지 않지만, 문제는 “지금 이 시점이 적절한가” 하는 부분이다. 세계 경제는 금리 고점, 경기 둔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추가 규제를 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 측은 신뢰 개혁은 침체기에 시작할수록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지배구조 개혁을 본격화해야 경기 회복기에 외국인 투자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반면, 반대 측은 기업들이 이미 투자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하면, 혁신적 경영 활동이 더 위축되고 장기 성장 전략이 후퇴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법 개정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완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배임죄 면책 범위를 확대하거나, 장기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일정한 세이프하버 규정을 마련하면 경영진이 소송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장기 혁신에 과감히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상법개정안은 분명히 소액주주 보호와 신뢰 회복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혁신 위축과 기업 자율성 저해라는 단점도 안고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은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균형이다. 즉, 신뢰를 제도적으로 확보하면서도, 혁신을 위한 자율성을 일정 부분 보장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상법개정안은 “신뢰와 혁신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라는 한국 경제의 과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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