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 37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따뜻한 그림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무심한 듯 몇 개의 선으로만 쓱쓱 그려진 그림. 하루키가 ‘소울브라더’라고 부른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입니다. 1981년 첫 작업 이후 둘은 30년을 함께 했죠. 하루키는 그에 대해 “세상에서 내가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마음을 허락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글 위에 그림이 입혀지고, 그림 위에 글이 녹아드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 두 명의 브런치 작가님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빨강머리앤을 그리고 쓰다 - 글X그림 파트너 작가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수민 작가님과 희재 작가님입니다. 수민(손수민) 작가님 그리고 희재(하지희) 작가님이 쓴 책 <그저 널 안아주고 싶었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둘은 서로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려갔을까요. 두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희재: 브런치에서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 글을 평가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요. 방법 중 하나가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는 거였죠. 대학생 때 했던 공모전은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춘 성격이 강했지만, 브런치에서는 최소한의 틀만으로 제가 하고픈 대로 할 수 있었어요. 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쓰는 사람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거요. 더 매력적인 건, 제 생각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고요.
수민: 전 이런 공모전과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될 거란 기대도 거의 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기회에 정말 기뻤어요. 출판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내는 기회는 언제나 귀한 것이니까요. 참 이상하죠? 출판이라는 꿈은 이루어도 또다시 이루고 싶은 꿈이에요. 공모전을 기회로 출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저에게 너무 가치 있는 일이에요. 출판 관련 컨텐츠를 이렇게 세심하게 다루는 플랫폼은 브런치가 유일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기회가 브런치에 있어요. 저도 언제나 출판을 꿈꿔왔지만, 그 방법이 참 막연했거든요. 브런치는 저 같은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좋은 공모전들이 많이 열리는 것 같아요.
수민: 프로젝트 결과 발표가 난 뒤 11월, 광화문에서 처음 만났어요. 티는 안 났겠지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갈 작가님과의 첫 만남이니까요.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함께하는 작가님과의 어울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만나기 전에 작가님이 브런치에 올리셨던 글들을 읽고 갔는데, 글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좀 급하고 서두를 때가 많은 편이라 저와 다른 분위기에서 호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새로운 사람과 함께 작업한다는 걱정과 부담이 없지 않았는데, 오히려 크고 작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았어요.
희재: 수민 작가님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어떤 책이 좋았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등등 서로에 대한 이야기요. 수민 작가님과 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또 비슷한 모습도 있었죠. 아마 앤 셜리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잘 어울렸겠죠.
희재: 정해진 기한까지 원고를 작성해서 수민 작가님께 보내드리면,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글에 어울리는’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일종의 감상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글을 읽고 작가님만의 시선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해 주셨으니까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피드백이었죠. 텍스트가 이미지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는데, 감동할 정도로 좋은 그림을 선물 받았답니다. 글과 그림이 만나 하나의 결과물이 된다는 건, 처음 경험해보는 즐거움이었어요! 물론 힘든 부분도 있었죠. 제가 쓴 글을 토대로 그림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마감일을 잘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제가 밀리면 그림 작가님이 아예 작업을 못 하시게 되니까요.
수민: 저는 작가님이 글을 통해 그려내는 앤이 정말 좋았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도무지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작가님의 글 덕분에 어려움 없이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어요. 희재 작가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중엔, 아무래도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친구나 연인, 회사 동료 등 특정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더욱 재밌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앤이 아닌 새로운 인물에 대해 상상하는 게 즐거웠거든요.
희재: 책를 통해선 2030이 성장하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 생각해봤을 고민, 머리와 가슴으로 느꼈을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제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선후배의 이야기를 써나갔지만, 알고 계시겠죠? 제 지인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요. 우리가 모두 겪었고 또 공유하고 있는 상처라는 것을요. 누군가 맞닥뜨린 아픔 앞에 애써 위로를 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었지만, 그보다 절실했던 건 ‘그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좋겠어.’였으니까요. 그때의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장황하고 유려한 말보다 조용히 안아주는 따뜻한 포옹 한 번이, 부드럽게 잡아주는 손 한 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법이죠.
수민: 섣부른 위로나 공감이 참 조심스러운 요즘이에요. 위로가 혹여 잔소리처럼 들리진 않을까, 공감이 되려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죠. 너무 과한 위로와 공감에 때론 지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저희 책(이야기) 만큼은 좀 편안하길 바랐어요. 그냥 읽고 보며 마음이 놓이는 그런 이야기이길 바랐습니다. ‘안는다’는 행위가 실제로 그렇잖아요.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있을 수 있는 것. 누군가에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것. 마음을 위로하고 쉬어가기에, 그만한 것이 없기도 하지요. 우리가 힘들 때 서로의 품을 찾듯이, 저희의 이야기도 힘들 때 생각나는 글과 그림이길 바라요. <그저 널 안아주고 싶었어>를 보며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또 누군가에게 품을 내어주듯이 건넬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