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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스토리팀 Dec 12. 2019

작가 인터뷰 - 한식문화 공모전, 장관상 수상 이후

꿈을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 38

'외할머니의 무말랭이는 빨간색이 아니었다.'라고 시작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이북식 무말랭이에 대한 추억과 함께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이 담긴 글이었죠. 눈물샘을 자극하는 와중에도 '허여멀건' 무말랭이를 꼭 한번 맛보고 싶게 한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는 우리家한식 - 한식문화 이야기∙일러스트 공모전에서 1등 상인 장원을 수상했습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심사위원들은 이 글을 두고 "탄탄한 문장력과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와 한 가족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을 감동적으로 연결하고 진솔하게 풀어내었다."고 평했고, 상금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여했습니다. 


장관상의 주인공, 기며니(이재윤) 작가님에게 글에 얽힌 비하인드, 그리고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며니(이재윤) 작가에게 수여된 우리家한식 장원상



장원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글을 응모할 때 수상을 예감하셨나요?

제시간에 제출한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글을 발행하신 날짜가 응모 마감일인 8월 23일이네요.

공모전 시작일에 브런치팀의 공지를 봤어요.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하고 초안을 써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고 지우길 반복했죠. 뭘 써도 식상하고 뭘 써도 별로더라고요.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글이 완성되지 않아서 계속 머리만 쥐어짰어요. 브런치 공모전은 타 공모전과는 다르게 지원작이 공개되잖아요. 좋은 글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외할머니는 저의 뿌리이자 정체성이고, 영원한 뮤즈예요.



그럼 어떤 계기로 '외할머니'와 '무말랭이'라는 글감을 발견하게 되었나요?

포기하는 심정으로 공모전 마감일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그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반찬으로 빨간 무말랭이가 나왔어요. 운명처럼. '빨간 거 말고 이북식 무말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 답은 제 안에 있었는데 계속해서 외부에서 소재를 찾고,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9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잊고 있었던 거예요.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해요.

BBC에 할머니를 인터뷰한 기사*를 쓴 적 있어요. 대학 가서 한창 영어 공부할 때 BBC 홈페이지의 라디오 생방송을 듣는데, 패널들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거기에 댓글 달았던 걸 계기로 BBC에서 저에게 한국전쟁 60주년 특별 기고문을 써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때도 마감일이 다가올 때까지 머리만 쥐어짜고 있었죠. 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해서 현대사 박물관도 가고 교수님들도 찾아다녔지만 막상 쓰려니 글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외할머니가 매일같이 6.25 이야기하시던 게 생각났어요. 기사를 쓰기 위해 할머니를 인터뷰하던 날 함께 많이 울었어요. 

(*Korean War: one woman's story, 2010. 6. 25, BBC)


정말 특별한 경험이네요. 글에서도 느껴지듯이, 외할머니와의 정이 각별하셨던 것 같아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대신 외할머니가 저를 기르셨어요. 외할머니 댁이 가까워서 중고등학교 때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뵈었고요. 대입 면접장에도 할머니랑 같이 갔고. 가까운만큼 툴툴거리기도 많이 했고, 할머니가 하는 푸념들이 지겨울 때가 많았죠. 그런데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알게 됐어요. 할머니는 50살이 되기 전까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렸다고 하시더라고요. 맨날 힘든 과거만 얘기하는 외할머니의 말에 담긴 삶과 아픔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할머니의 푸념에 담긴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가 보였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한 시대가, 때로는 한 국가가 담기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글자로 풀어내며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이번 한식문화 공모전으로 다시 한번 그 경험을 했어요. 외할머니는 저의 뿌리이자 정체성이고, 영원한 뮤즈예요.


외조부님 손에 자란 기며니 작가


마감일 당일에 쓴 글이 장원이 됐네요.

부끄럽지만 퇴고도 제대로 못하고 제출했어요. 마감이 밤 12시였고, 제출은 11시 40분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력이 좋아서인지 단숨에 읽히는 글입니다. 짧지 않은 길이의 글인데도요.

제출한 후에 퇴고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정 버튼을 눌렀는데, 수정이 되더라고요. 양심을 던지고 글을 수정했어요. 보고 또 보고 계속 고치고 또 고치고 읽을 때마다 조사와 어미, 접속부사, 단어와 표현 등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을 다듬었어요.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더라고요. (웃음) '어차피 수상도 못할 거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수정했죠. 그런데 정말 '갓'브런치! 저의 부정 수정 행위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상 작품을 보도자료로 내면서 제 글을 첨부하셨는데요, 거기엔 제가 마감 시간 전에 제출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죄짓고 살면 안 된다는 걸 깨달으며 혼자 얼굴이 빨개졌죠.



브런치는 최고의 선생님이자 달콤한 채찍질의 고수입니다. 



글에 대한 독자 분들 반응은 어땠나요?

정말이지 무반응이었습니다. 최근에 브런치북 인사이트 리포트가 생겼잖아요. 독자님의 반응을 투명하게 비춰준답니다. 수상작인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는 브런치북 기능 전에도 조회 수가 낮았고, 지금 인사이트 리포트를 봐도 다른 글에 비해 완독률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글이에요. 거짓말하지 않는 통계에 팩트 폭행당하면서 글을 다듬고, 독자님들이 집중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수련하고 있어요.


작가님에게 브런치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브런치로 글쓰기 '홈트(홈트레이닝)' 중입니다. 헬스장 가서 비싼 수업료 내고 퍼스널 트레이닝받으면서 근육질 몸을 만들잖아요. 하지만 의지만 있으면 트레이너 없이도 집에서도 건강한 몸을 가꿀 수 있어요. 브런치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고 싶은 의지와 동기를 불어넣어주는 좋은 선생님이에요. 독자님들 반응을 살피면서 자가발전하게 만들어줘요.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자주 읽어보시는 편인가요?

브런치 글을 읽는 것 역시 훌륭한 글쓰기 '홈트'에요. 읽는 와중에도 계속 글쓰기 학습이 되더라고요. 브런치 글을 읽을 때면 기성 문학 작품이나 다른 플랫폼의 포스팅에서는 느끼기 힘든 반응이 몸에서 일어나요. '나는 저렇겐 못 쓰겠다'라는 생각에 소심한 절필을 해볼 때도 있고, 어떤 글은 라이킷 수가 어마어마한데 '내 기준엔 별로'라면서 열등감과 질투가 솟구칠 때도 있어요.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마음에 담아 계속 쓰다 보니 요즘 아주 천천히 저에게도 변화가 일어남을 느끼고 있습니다.


외할머니가 세상에 남긴 훌륭한 유산. 다섯 딸들이 가족을 이뤄 대가족이 되었다.


전업 작가를 목표로 퇴사하셨다고 들었어요.

아직 제 수준이 작가로 밥벌이하기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길을 헤매는 중이에요. 경영 컨설턴트, 기자 등의 이전 경력을 활용해서 단기 용역을 병행하는 중입니다. 간헐적 단식마냥 아주 들쑥날쑥한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단기 특수교육 교사 일을 하면서 사회적 기업 창업도 준비하고 있고요. 여러 글쓰기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전업 작가가 되는 길을 찾고 있어요.



글을 쓴 게 아니라 '싸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잘하신 거예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도 응모하셨죠. 공모전 응모를 목표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마감일이 다가오면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을 엮어낼 힘이 생겨요. 생각은 많지만 글로 옮기는 건 정말 고된 노동이죠. 작가의 서랍이나 스마트폰 메모장에 단어와 문장, 제목만 쌓아놓고 내용 채우기는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최근 브런치북 7회 마감일 이틀 전 브런치팀의 푸시 알림을 잊을 수가 없어요. "브런치북은 주말에 가장 많이 응모한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라던 그 푸시 알람 문구! 저한테만 보내주시는 것만 같은 따뜻한 채찍질에 이번에도 마지막 날 브런치북을 완성하고야 말았어요. 브런치는 최고의 선생님이자 달콤한 채찍질의 고수입니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작가님들에게 전해주실 팁이 있을까요?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땐 마감일까지 반복해서 시간과 분량 제한을 두고 써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예를 들면 '공모전 키워드: 엄마, 제한 시간 60분, 1,000자(A4 용지 3분의 2)'처럼요. 처음엔 생각만 하며 끙끙대다 50분이 가 버려요. 중요한 건 스스로 정한 제한 시간이 5분 남았더라도 무조건 1,000자는 채워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쓸 말 없다. 엄마는 어릴 때 나한테 공부를 하라고 했다. 엄마는 내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 다 알고 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왜 자꾸 내 가방을 들여다보는 것일까. 기분이 나쁘다. 배가 고프다. 갈비가 먹고 싶다. 엄마는 갈비를 좋아한다..]처럼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대로 써 보세요. 글을 쓴 게 아니라 '싸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잘하신 거예요.


재밌네요. 작가님께서 직접 해 보신 방법인가요? 

저는 2012년부터 매주 5회 이상 언론고시 글쓰기 스터디를 하면서 수많은 '망글(망한 글)'을 쓰고 퇴고하길 반복했어요. 어림잡아 1,000편 가까이 쓰고 고치고 버리기 했죠. 


그래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제가 처음 쓴 글을 보고 스터디 팀원들이 해준 코멘트를 잊을 수가 없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셨나 봐요.", "문장에 주어가 없고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요.", "너무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겠네요." (웃음) 김연아의 아름다운 트리플 악셀만큼이나 글쓰기도 생각 근육을 기르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아름다운 글을 써내는 그 날까지 계속 도전하고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본인만의 '치트키(비장의 무기)'를 찾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할머니와 마지막 가족여행


작가님의 '치트키'는 무엇이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저를 길러주신 외할머니, 그 서럽고 굴곡진 삶에 담긴 현대사가 치트키였더라고요. '할머니'와 '대가족'이라는 글감을 타고난 저는 어쩌면 글쓰기 금수저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글쓰기 세계에서는 힘든 경험이 많을수록 금수저인 거 아세요? 연애, 가난, 지질함, 슬픔, 우울, 지병, 부모님, 특이하게 생긴 내 발톱 등. 분명히 있어요. 계속 글을 쓰면서 내면에 숨겨진 무기를 발굴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브런치에서는 앞으로도 한식문화 공모전과 같은 좋은 취지의 공모전을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른 공모전에도 지원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네! 네네! 전업 작가가 되는 그 날까지, 그리고 전업 작가가 된 후에도 계속 영원히 지원하고 싶어요.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늘 지금처럼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즐기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장원을 수상한 기며니(이재윤) 작가님을 비롯한 29명의 수상 작가님들의 작품을 모은 책 <2019 한식문화 이야기 일러스트 공모전 수상작품집>이 12월 23일 출간될 예정입니다. 출간작은 전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수상 작가님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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