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런치스토리팀 Sep 09. 2019

구독자 수나 출간 여부를 보지 않고 작품부터 봤어요

권미경 에디터가 함께 만든 당신의 책

권미경은 방송 작가, 웹 기획자, 카피라이터 등을 하다가 조금 늦게 편집 일을 시작했다. 첫 출판사에서 5년을 다니며 200만 권에 가까운 누적 판매 수를 기록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기획·편집했고, 퇴사 후 웨일북 출판사를 만들어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기획하고 편집했다. 최근에는 『90년생이 온다』,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등을 펴내며 적절한 시대상을 반영한 책을 기획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권미경 에디터 © Magazine B


고래처럼 넓이와 깊이를 오가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9년 3월 수상작을 발표한 ‘제6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브런치와 함께 출간하고 싶은 작가를 선정해 책 출간을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결정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웨일북 출판사를 만들고 3년이 되어갈 즈음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습니다. 웨일북을 알아봐 주는 건가 싶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출판사가 아니라 에디터 중심이라고 하더군요. 엄밀히 말하면 이전의 출판사 근무 시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기획한 에디터로 제안받은 것이죠. 그동안 에디터로서 외부에 드러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견지해왔는데, 웨일북을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응했습니다. 그전에도 웨일북은 브런치 작가들의 책을 출간했고 이번 프로젝트로 브런치에 좀 더 다가가고 싶었어요. 유명 저자를 잡으려 하기보다 신인 저자를 발굴하길 좋아하는 저에게 브런치는 보물섬 같은 곳이거든요. 



많은 편집자가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지닌 작가를 발굴하고 있는데요, 이른바 ‘1인 미디어 시대’에 작가를 발굴하는 편집자로서의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는 것이 쉬워졌나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으니까요. 작가 지망생이라면 먼저 수많은 글 속에서 자신의 글이 책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가끔 서점에 가서 그토록 많은 책 중에서 웨일북의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상기하고 신기해하거든요. 새로운 책을 생각할 때, 무수한 작가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이기를 바랍니다. 자기만의 색을 지닌, 지문 같은 글을 쓰는 이가 있다면 편집자가 밥 뜨던 숟가락을 놓고 달려갈 겁니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 말이죠. 누구나 사는 모습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기 안에서 걸러내는 방식은 저마다 달라요. 이 엇비슷한 삶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작가이기 전에 먼저 편집자가 되어보는 거예요. 



손화신 작가의 <어른 안 하겠습니다>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당선작으로 선정했는데요, 최종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경쟁 작품 중에서 드물게 목차가 잘 짜여 있었어요. 구성에서 이미 또렷한 콘셉트가 보였죠. 작가로부터 자신이 쓰려는 책의 전체상이 잡혀 있고 그걸 장악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블라인드 심사를 위해 구독자 수나 출간 여부를 보지 않고 작품을 먼저 확인해서 손화신 작가가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첫 회 수상자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어요. 작가의 직업이 기자라는 것도 알지 못했지요. 직업이 기자였기 때문에 자기 글이 잘 읽히게 하는 법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목차나 제목을 만드는 것에서부터요. 


하지만 이 작가의 장점은 수상이나 출간, 기자 생활 같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각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손화신 작가 그 자체에 매력을 느꼈거든요. 이 작가는 성공한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아요. 동시에 욕망하는 것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죠. 성공한 어른보다는 좋은 어른이 되려고 하는 몸부림으로 읽혔어요. 역설적으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아이의 태도를 살피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어른’을 요구하면서도 진짜 어른이 되기 어려운 건 어른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아이로 시선을 돌려보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와의 출간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누군가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많은 글자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제가 몰랐던 한 사람의 인간을 만나게 되죠. 그래서 편집자는 혼자 작가와 친구가 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손화신 작가는 어른을 하지 않겠다던 당찬 선언과 달리 꽤 여리고 섬세해 보였어요. 결코 악동이 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라는 점이 재미있었죠. 


그리고 늘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았어요. 기자처럼 늘 써야 하는 사람은 자기 글에 쉬이 지칠 수 있는데, 손화신 작가는 계속해서 써요. 아이처럼 기뻐하면서요. 초고를 받고 작가님과 처음 둘이 만난 적이 있어요. 목차를 미리 정리해 각 꼭지에 대해 메모를 해두었죠. 전체적인 일관성을 위해 글을 조금씩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좀 놀란 듯해서 미안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에 관한 피드백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손화신 작가는 성실하게 해냈어요. 그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죠. 손화신 작가는 어른의 기본은 갖추면서 아이의 기질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자기 책처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곧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얼핏 작가의 외로움이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건 비단 이 작가만의 모습은 아닐 거예요. 지금 같은 시대에 30대 중반까지 살아온 피로감, 차마 놓을 수 없는 어른의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겠죠. 저는 우선 작가가 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을 계기로 좀 더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이 책을 어린 날의 보물상자처럼 곁에 두면서요. 다음으로 책을 읽는 이들이 작가와 함께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지 않을 수는 없어요. 책임감이나 성숙함은 미덕이 아니라 필수니까요. 하지만 어린아이의 태도를 기억함으로써 내 삶에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어요. 이 책을 통해 자기 안의 반짝이는 생기를 살려내길 바랍니다.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 손화신 저 / 웨일북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글을 어렵지 않게 표현하고 공유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브런치가 출판계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플랫폼은 늘 존재했어요. 편집자들도 변화하는 여러 플랫폼 속에서 작가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왔고요. 그래서 어떤 툴이나 플랫폼 자체가 출판계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브런치의 경우 모바일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지점이 영향력을 키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블로그처럼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지 않고, 작가라는 키워드 아래 오롯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도 크고요. 


정식 작가로 등용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모두가 주목하도록 판을 벌여놓은 것이죠. 실제로 책을 출간한 작가의 사례를 보면 어떤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이 책으로 나오는지 목도할 수 있어요. 사실 출판계에 미친 영향보다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겠네요.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새로운 작가의 탄생’입니다. 평범한 개인이 브런치에서 작가라 불리고 ‘출간 작가’가 되는 기회를 얻고 있는데요, 브런치 작가와 기성 작가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새로운 작가의 탄생은 수많은 개인의 탄생에서 비롯했다고 봅니다. 이전까지 기성 작가는 권위를 획득한 전문가이거나 ‘올드 미디어’ 속에서 유명해진 사람 혹은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브런치 작가는 오직 자신의 개성이 무기인 사람들이죠. 직업이 없거나 유명하지 않아도 서사가 있다면, 평범해 보여도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작가가 될 수 있어요.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높은 만큼 전문적인 편집에 대한 신인 작가의 반발도 있을 것 같아요. 오랜 경력을 지닌 편집자로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요? 


신인 작가라고 해서 반발하고 기성 작가라고 해서 용인하는 것 같진 않아요. 개인의 차이일 뿐이죠. 자기 글에 대한 포용력 문제거든요. 제 경우엔 신인 작가가 에디터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책임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원래 작가의 글 자체를 에디터의 스타일대로 수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글은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성격을 담아내니 작가의 개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글을 살려주는 것이 좋아요. 에디터가 다듬은 글을 작가가 봤을 때 ‘어디가 수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글이 좋아졌다’ 하는 정도가 적당한 수준 같습니다. 에디터의 역할은 큰 흐름을 살펴보고 독자를 대변해 의견을 전하고 작가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거예요. 책 한 권 안에 이야기가 효율적으로 담기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정한 ‘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참여 방식이 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그간에는 작성 중인 글을 ‘매거진’ 단위로 실시간 묶어 제출했다면, 향후엔 작가의 기획 의도와 목차에 따라 완결된 형태로 엮은 ‘브런치북’으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새로워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잘 구성하면 눈에 띌 확률이 높습니다. 기획이라는 건 일차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요. 머리와 입과 손에서 글이 완벽하게 줄줄 써지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이야기의 맵을 그려보세요. 저는 뒤늦은 나이에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좋은 책의 목차를 많이 봤어요. 파일에 모아 프린트해서 보고 또 봤죠. 그렇게 하면 책 한 권을 기획하기 위해 얼마나 촘촘한 생각이 붙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전에 선행해야 할 것이 독자를 상정하는 일입니다. ‘내 얘기를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갖고 있지 않으면 한 문장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해요. 책은 기본적으로 물성을 지닌 상품인 만큼 이걸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닿아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 독자를 프로파일링해보길 권합니다. 나이와 성별은 물론,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 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지 상상하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그러면 그 책의 기획 의도와 목차가 잡힐 거예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행위에는 시간성이 있으니까요. 


좋은 글은 발견된다고 하지만, 그게 꼭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클릭이나 댓글이 없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계속해서 성실하게 써나가세요. 웨일북이 찾아가겠습니다. 



권미경 에디터가 함께 만든
제6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저자: 손화신

편집: 권미경 (웨일북 펴냄)

원작: <어른 안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어른의 '조건'을 갖추려다가 제대로 된 인간도 되지 못하는 현실. 세상의 어른들이 그렇듯 작가 역시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의식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고, 모든 것의 효율만 따지는 불완전한 어른이다. 어느 날 문득, 작가는 아이에게서 삶의 200% 주인공으로 살아내는 '태도'를 발견하고, 지금 자신에게는 성숙에 대한 강요보다 순수를 향한 용기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래야만 성숙함만으로는 거머쥐지 못할 행복을 용감히 차지할 수 있음을.




이전 01화 우리는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을 믿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