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
콰가 얼룩말, 여행 비둘기, 푸른 영양......
이 동물들의 공통점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희생되고 사라져 버린 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장노아 작가님.
멸종된 동물과 문명의 상징인 초고층 빌딩이 함께 있는 작가님의 그림과 글을 보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보시죠!
저는 평소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그림 그리고 책 읽고 저의 오랜 친구인 반려견 초롱이를 끌어안고 자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야행성이라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학업을 마친 후 몇 년간 집에만 있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도 재택 일을 하게 됐거든요. 지금은 독일어를 배우러 독일에 와 있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납니다.
학창 시절,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고 공상만 하며 보냈는데 오히려 모든 학업 과정이 끝나고 뒤늦게 공부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공부가 재밌어지니 늦게 자도 아침에 눈이 떠지고 일어나게 되네요. 제 딴에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리바리해서 무슨 일이든 뒷북치는 게 장기인데 인생도 약간 뒷북 스타일로 사는 것 같아요.
제 마음에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일은 절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서 수학 문제를 겨우 하나 맞힌 적이 있어요. 집합 문제 하나만 풀 수 있었거든요. 그날따라 찍은 것도 하나도 안 맞았어요. 선생님이 화가 나셔서 보기 싫으니 맨 뒷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만들기와 그리기는 잘했습니다. 평소 덜렁대고 잘 잊어버려서 엄마나 친구에게 타박을 받는 편인데 미술 작업을 할 때는 다른 사람처럼 꼼꼼해집니다. 뭔가를 그리고 만들고 색을 입히는 그 시간 동안 저는 아주 재밌는 꿈을 꾸는 듯 즐겁습니다. 엄마는 제가 그림만 그리다가 돈도 제대로 못 벌고 불행해 질까 봐 늘 걱정하시지만 저는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가난하든 인정받지 못하든 누가 뭐라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한 것 같아요.
원래는 <세계 초고층 빌딩과 사라지는 동물들> 연작을 그림으로만 발표하고 언젠가 책을 내더라도 그림만 수록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멸종된 과정을 조사하다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덧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난 주제라 호응을 기대하지
않았고, 공모에 선정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모 마지막 날 자정 직전에야 겨우 10번째 글을 완성해서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판형 26 x 34cm 안에 총 20편의 그림과 이야기가 실리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책이 커진 만큼 필요한 글의 분량도 늘었습니다. 그림을 몇 장 더 그리고 연필화 20점을 추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글쓰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제가 평생 남을 종이책을 출간하려니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어요.
주제의 특성상 저의 경험이나 상상을 기반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처가 확실한 자료가 필요했어요. 브런치에 올렸던 글은 간략한 데다 카더라 식의 이야기도 간혹 섞여 있었고 시간이 나는 대로 자료를 조사해서 추가하고 글을 다듬고 했지만, 종이책은 그럴 수가 없으니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국내에는 멸종 및 위기 동물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엉성하게 글을 엮을 수는 없었습니다. 멸종 동물과 위기 동물 정보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도 출간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11월 말까지 전부 넘기기로 했던 글과 그림도 12월 말이 되어서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편집자님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셨습니다. 스텔러 바다소와 갈색 거미원숭이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분을 지우고 다시 그리느라 추가로 일주일이 더 필요했습니다. 황금두꺼비를 들고 있는 소녀의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고치고 다시 찍고, 산악고릴라의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수정하고 다시 찍고, 도도의 꽁지깃을 빠뜨려 추가로 그려 넣고 다시 찍고. 아무튼 마지막 최종 교정까지 두 달 반 동안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전부 행복한 고생이자 즐거운 기억이 되었네요.
많은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편집자에게 전하는 감사인사를 보았습니다. 예전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첫 책을 준비하면서 편집자가 없으면 책이 제 모양을 갖추고 세상에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편집자는 실력뿐 아니라 인품 또한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편집자님처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책에는 지면 관계상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김정예 편집자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의 책은 특히 기성세대가 많이 읽어 줬으면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집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개발이 심화되기 전이라 자연을 가까이 누릴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이 공사 중인 것 같고 동네마다 있었던 크고 작은 동산들도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짧고 소중한 삶을 타인과 경쟁하느라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사회적 모순과 압박이 너무 커요. 물질만능주의와 무의미한 성공지향적 가치관이 만연해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동물이나 아이들처럼 순수한 존재에게 우리 세상은 너무나 가혹한 곳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기성세대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멸종 동물의 수난사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인간의 탐욕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는데 인간은 공존이 아니라 학살을 선택했지요. 마치 전염병처럼 탐욕과 경쟁이 세상에 널리, 그리고 깊이 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정말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가치관과 풍요로운 지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제가 전하려는 이야기는 단순히 자연보호, 동물 보호가 아닙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 특히 나보다 연약한 존재를 대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멸종된 동물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동물을 하나만 고르는 것은 힘들어요. 하나같이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멸종 동물을 그릴 때, 밑그림을 그리고 마지막 붓질을 할 때까지 한 점당 최소 7일에서 10일이 소요됩니다. 그동안에는 오로지 그 동물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그렇게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그리기 때문에 저에게 소중하지 않은 동물이 없습니다.
처음 멸종 동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그린 동물은 여행 비둘기였습니다. 배경의 건물은 현재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할리파라는 이름의 초고층빌딩입니다. 작업을 시작한 2014년이 마지막 여행 비둘기 '마사'가 죽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어요. 여행 비둘기는 새 중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아서 거대한 무리가 이동을 시작하면 삼일 밤낮 하늘을 뒤덮어 낮에도 어두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연약한 동물 중 하나인 비둘기가 그렇게 번성한 시절이었다면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자연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상태였겠지요.
여행 비둘기는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크고 작은 동물들이 하나씩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본디 자연은 자정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지만, 최근에는 인간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을 깊이 경험한 사람은 자연의 소중함을 잘 압니다. 자연에서 얻는 평화와 치유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지요. 우리가 아이들과 동물들에게서 자연을 빼앗는 것은 정말 큰 잘못입니다.
재작년, 몸집이 작은 동물들을 유통하는 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병에 걸리거나 상품가치가 없어져 방치되는 동물 여러 마리를 저에게 데려왔습니다. 햄스터나 토끼, 물고기 같은 소동물은 수명이 짧고 번식도 잘하기 때문에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귀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병든 모란앵무, 어미가 돌보지 않아 죽게 된 고슴도치 새끼들, 당장 판매할 수 없는 어미 골든 햄스터와 갓 태어난 새끼들, 한쪽 발이 없거나 오랫동안 팔리지 않고 수명이 다해 가는 골든 햄스터가 저에게 왔습니다. 고슴도치 새끼들은 너무 약해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햄스터 새끼들도 8마리가 하루에 한 마리 꼴로 전부 죽었어요.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죽으면 숲에 묻어 주고 싶어서 버려지는 동물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와서 죽은 작은 동물들이 작업실 뒤편에 있는 숲에 잠들어 있습니다. 거름이 되어 나무의 일부가 되라고 나무 밑에 묻었습니다.
살면서 제가 직접 돌보던 크고 작은 동물의 죽음을 수차례 경험했지만, 엄지손가락만 한 고슴도치 새끼의 생명이 떠나던 순간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흘 동안 정성껏 돌보았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녀석은 한참이나 몸을 바둥거리며 숨을 쉬려고 애썼습니다. 바늘 끝보다도 작은 발톱들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끼손가락 끝으로 심장 부위를 살살 문질러 주었어요. 결국 녀석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쉬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연약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지켜 줄 수 없어서 미안했고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크든 작든 모든 존재는 너나없이 소중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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