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흰머리

by 현정화

열여섯이었다.

동생의 병으로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고 (뭐 가세랄 것도 없었지만),
가족이 흩어져 살기 시작했던 때


나는 고작 열여섯이었고 막내 동생은 고작 열한 살이었다.

열넷의 둘째 동생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는 큰 병을 선고받았고

TV에 나오는 어느 환자의 집처럼 병원비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다.


그 흔한 보험도 제대로 들어 놓지 못할 살림의 우리 집.

엄마의 오랜 친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보험을 들었지만
동생의 큰 병을 떼어내기엔 턱 없이 부족했던 병원비.

엄마는 동생의 곁을 지켰고, 아빠는 병원비를 구하겠노라며 한동안 집을 비웠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1차 병원비를 납부해야 하는 시점에 아빠가 나타났다.


백말의 노인 머리를 하고서.


일주일쯤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은데,
이제 갓 마흔 중반의 나이를 넘긴 아빠의 머리는 일흔이 훌쩍 넘은 노인의 것이 되어있었다.


놀라고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병원비를 구했다는 기쁨보다
아빠의 백발이 너무 충격적이라 한동안 아빠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빠는
아픈 딸의 아버지로, 가장의 책임으로, 죄인의 심정으로
그 대단한 자존심을 가진 우리 아빠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무릎을 낮췄을까.

사람이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놓이면 백발이 되는 걸까.
아빠의 마음이 하얗게 세어버린 걸까.

나는 그래서 세월이 흘러 당연해진 아빠의 흰머리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린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흰머리가 싫다.
세월에 당연히 생기고야 마는 주름 같은 걸 텐데, 유독 나는 흰머리가 싫다.


요즘은 엄마의 흰머리가 부쩍 나를 아프게 한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아픈 외할머니의 곁을 지키느라 하얗게 세어버린 엄마의 머리카락이
열여섯 때의 아빠를 떠올리게 하고, 고생에 억눌린 부모님의 인생을 마주하게 한다.

무뚝뚝하고, 아직도 철이 없는 나는
내 마음이 속상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또 괜히 핀잔을 준다.

'염색 좀 해!, 머리가 그게 뭐야 할머니 같잖아!'

아마 엄마는 또 멋쩍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실 테다.

언제나 자식의 핀잔에도, 파렴치에도
엄마 아빠는 괜찮다고만 하신다. 아무렇지 않다고만 하신다.

갚을 길 없는 부모님의 마음에 나는 오늘도 숙연해지고 만다.

나는 엄마의 아빠의 흰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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