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그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읽게 되었다
책 그리고 읽기… 하면
우선 나는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만히 앉아서 있는 걸 정말 싫어했고 에너지를 밖에다 쏟아냈다.
어릴 때는 맨날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기 바쁘고 숙제라는 것도 별로 한 기억이 없다.(엄마한테 혼나서 억지로 하긴 했지만)
한 번은 책을 읽으면 뭔가 주어지는 것이 있었던지, 읽고 확인받는데 그저 내가 ‘글자’를 눈으로 ‘체크’했다는 사실만으로 책을 읽었다고 말한 적도 있고…
다음날 무슨 시험이 있어서 책상에 앉았지만 책을 읽고 5분 안에 잠들어서 아무리 어리고 관심 없는 나였어도 다소 스스로에게 황당해했었던 기억이 있다.(지금도 참 당황스러운 기억이다.)
그만큼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행위였다. 읽는다는 것은.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전집 70권.
엄마가 읽으라고 사놓은 약 70권짜리 무슨 전집이 있었는데(위에 빨간 줄이 있고 바탕은 검은색이었는데 나는 그걸 ‘빨간책’이라고 불렀다.) 엄마도 읽고 심지어 집에 놀러 온 이모도 읽었지만, 나는.
결국 한 권 안에 들어있던 단편소설만 읽고 끝내 못 읽었다.
이 집 저 집 이사 갈 때마다 끌고 다녔지만(10년 이상을 읽어낼 거라며 버리질 않았다.) 책을 읽지도 않는데 볼 때마다 화가 나셨는지 나중에 엄마가 버려버렸다.
그래서 전집을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언젠간 마쳐야 할 숙제처럼 느낀 ‘책 읽기’가 전집을 버리고 나서는 뭔가 모를 부채감으로 남겨져 버렸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조금씩 자발적으로든 반강제적으로든 책을 한 권, 두 권 읽긴 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진 않아도 좋아하긴 했달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책을 많이 사버리고 읽어야 할 것들은 쌓이고 다 읽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책 외에는 잘 안 사려고 노력했고, (주로 도서관을 이용했다.)
다시는 전집을 버리듯이 버리지 않고 무조건 읽고 정리하던지 누굴 주던지 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최대한 계속 읽어내려고 하고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늘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들, 해내야 하는 일들 등등 때문에 읽어도 책은 줄지 않는 것만 같고, 읽어도 읽는 것 같지 않는 기분으로 살아왔던 거 같다.
그러던 2023년에서 2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즈음에.
밖은 춥고 세상은 어둡고 내가 앞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민으로 깊어지는 어느 날 새벽에.
불현듯 나의 모습을 잠시 멀찍이 바라보듯 생각해 보니.
가만히 앉아서 혹은 비스듬히 누워서 읽고 있었다.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기도 하고, 책장에 있던 책들을 간소화하기 위해 정리하려고 따로 빼 두었던 책들을 읽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긴 ‘읽는 삶’을 조금은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위해서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의 맛과 멋이라던데.
그런 내 현실 앞에서 몸부림치다가 보니 뭔가를 읽는 것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했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도 읽나 보다. 나도 그렇고.
이제는 다른 외부적인 이유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이 삶을 그저 둘 수가 없어 읽게 되었다.
서툴러도 이런 읽는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읽은 것들에 대해 앞으로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