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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Feb 15. 2023

쓰레기 같은 인간

정신이 산란하다.


아침에 만화책을 보며 나에게 자기 젓가락을 갖고 오라며 소리 지르던 첫째의 말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끓어올랐다.


첫째가 젓가락을 달라고 할 때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읽어보라고 보낸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여성평등한 나라인데 여성가족부에서 세금이나 축내며 젠더갈등을 부추긴다"는 요지의 게시글을 읽고 있었다. 순간 화가 솟구쳤지만 그에게 그것은 거짓뉴스이며 올해 OECD국 중 유리천장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였다는 통계자료를 보내주었다. 그러는 동안 첫째가 나에게 소리를 친 것이다.

 "젓가락 왜 안 가져와. 가져오라고 두 번이나 말했잖아. 젓가락 없이 어떻게 밥 먹으라고."

첫째의 그 말에 너무 화가 났다.

"엄마는 네 하인이 아니야. 젓가락이 필요하면 네가 가져다가 써."

그러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앞으로 네가 밥 차려먹어. 엄마는 네가 시키면 바로 갖다주고 그래야 하는 사람이 아니야. 엄마가 네 하인이야?"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지르고는 문 쾅 닫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가

'너는 너무 페미니즘에 집착해'라며 나를 비난했던 사람이 거짓뉴스 보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만화책을 읽으며 킥킥 웃고 있는 첫째 때문인지 헷갈렸다.

첫째는 내가 방에 들어가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슬램덩크를 보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가 싫어 둘째를 데리고 집에서 나와버렸다.

평소라면 밥 시중들고 옷 갈아입히고 양치시키고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나섰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려 하는데 그때서야 첫째가 허둥지둥 따라 나와 잘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너는 엄마 마음이 어떻든 신경 안 쓰고 만화책만 보면 되는 사람이다. 만화책이나 실컷 보고 살아라'며 소리를 질렀다.

첫째는 길에서 엉엉 울었다.

나는 미안하지도 않았다.

다만 화가 주체할 수 없이 났다.

그리고 그 화를 집에서 나보다 힘이 약한 어린이에게 푼 것이다.


세상은 나를 하인취급하면서 하인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망상이라고, 실제로는 여성평등한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도 나를 하인취급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래서 애꿎은 첫째에게 그 분노를 쏟아냈다.


내가 더욱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나도 나보다 약한 자에게 그 화를 분출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거다.


나도 밉고 자식도 밉고

다 밉고 싫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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