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과 앤디]는 짐 캐리가 영화 <맨 온 더 문>을 촬영할 당시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서 생활했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실존 인물이었던 앤디 카프먼의 생전 삶을 연기하는 영화였는데 짐 캐리는 그의 삶에 완전히 빙의해 버린다. 영화 촬영이 진행될수록 그는 스스로를 잃고 앤디 카프먼 그 자체로 생활하면서 통제불능이 된다. 짐 캐리 소속사 측에선 그가 정신병자로 보일까 봐 이 다큐멘터리 필름을 20년간이나 숨겨두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곳에 짐 캐리는 없다. 앤디 카프먼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찍는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며, 자신을 찾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을 희미하게 두었다.
짐 캐리는 앤디를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로부터 떠나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유로웠다. 통제불능에 가까웠던 개그맨인 앤디 카프먼의 삶에서 그는 더없이 즐거웠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여행을 떠났을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사는 곳에서 머나먼 곳으로 떠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고,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들 때 나는 내 문제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다른 자아를 가지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눈이 마주치면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한다.
하지만 여행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다시 시시하고 혐오스러운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욕실에 끼는 물때를 끊임없이 닦아내야 한다. 삶은 때로 초라하고 남루하고 더럽고 궁상스럽다.
책이나 영화에 깊게 빠져 나로부터 멀리 떠났던 날엔 다시 돌아오기 싫을 때가 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괴롭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내 이기심과 더러운 욕망, 거만함, 남을 이기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은 속물근성을 너무 잘 알아서 고통스럽다. 나란 존재가 너무 선명한 것이 고통이다.
나는 내가 했던 모든 말, 행동, 하지 말았어야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낱낱이 기억하고 곱씹어볼 수 있다. 내가 너무 선명하다. 매 순간.
그냥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조용히 앉아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무명의 희미한 자가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우주의 먼지라는 것을 정말로 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나를 너무 중요한 곳에,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빛나는 곳에 두고 싶어 한다.
그 간극 사이에서 매일밤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