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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15. 2022

한밤의 미친 산책

여름밤 여고생의 미친 가출



2004년 여름, 자정이 가까울 무렵 나는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른 채 집 앞 찻길에 서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는데 막상 집을 나오니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주머니가 없는 잠옷을 입고 있었고,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머리는 이틀째 감지 않은 상태였다. 문자 그대로 십 원짜리 하나 없는 상태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유는 고3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유행해서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그 드라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디어를 죄악시하는 집에서 자란 나는 친구들의 설명만으로 내용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따라 정말로 정말로 그 드라마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밤 10시에 몰래 텔레비전을 켰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아빠는 고3인 새끼가 미쳤느냐며 집 전체 두꺼비집을 내렸고, 머리를 때렸고, 내가 큰 소리로 울자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한밤중에 집 앞 찻길에서 길을 건널까 말까하며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혼자 걸음마를 시작했던 때부터 장성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엄청난 길치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일단 걸어갔다. 정처 없이 헤매는 일에 이골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가 나오면 일단 건넜다. 걷다가 어떤 지점에서 파란불이 켜지면 또 건넜다. 열대야가 연일 이어졌던 날들이라 등줄기와 감지 않은 머리 사이로 땀이 흘러 온몸이 끈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피가 너무 가려웠다.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계속 걸으니 발목이 아프고 발가락 사이가 슬리퍼 바닥과 붙어 찐득거렸다.


한 시간 정도를 걷자 내가 살던 작은 도시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그곳엔 무슨 상징처럼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었는데, 마치 나에게 보내는 신호 같았다. 습한 부스로 들어가 문을 꼭꼭 닫고 컬렉트콜로 그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하염없이 걸어 그 친구네 집에 도착해 친구의 잠든 부모님이 깨실까 걱정하며 머리부터 감았다.


씻고 나오니 친구는 나를 기다리다 잠들었고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는 낯선 시계와 낯선 식탁과 낯선 의자만이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했던 온몸에 힘이 빠졌다.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니 서늘한 기운이 퍼져 왔다. 생전 처음 와 보는 집에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는 사실이 우스우면서도 서글펐다. 사는 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의 부모님은 이미 나가시고 친구 혼자 내가 잠에서 깨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결국은 다음날 수시 시험을 쳐야 해서 학생증 등을 챙기러 집에 돌아가야했다. 집 문앞에 서 있을때의 절망감은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그 습함과 끈끈함이 느껴지는 계절이 되면 이제는 20년이 거의 되어가는 지난 일인데도 어제처럼 그 날이 떠오른다. 그 날의 걸음, 구겨진 내 옷과 손의 떨림 등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리고 습관 같은 우울을 어깨에 두르게 된다.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여고생 혼자 걸었던 그 굴다리와, 정비되지 않은 밤의 보도블록들, <여자 항시 대기>라며 번쩍이는 술집의 네온사인, 돈이 없어 컬렉트콜로 전화를 걸며 친구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으로 떨던 초라하고 불우했던 열여덟의 내가 떠오른다.


아. 이제는 정말 쿨해지고 싶은데.


내 안에는 뼛속까지 남루하고 끈끈한 내가 남아 있어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도무지, 서늘하고 청량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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