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의 사람들
내 어릴 때 집 근처에는 홍등가와 세탁소가 있었다.
홍등가와 세탁소는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 정경유착 정도로 긴밀하고 은밀한 관계는 아니겠지만 붉은 등이 켜진 벌집, 안나, 장미 같은 가게들에서는 다량의 빨래가 나올 것이고 그 덕에 세탁소 주인 부부께옵서는 나들이라도 한 번 더 가실 수 있겠지.
미취학 아동이던 나는 엄마랑 손을 잡고 밤길을 걸어 세탁소에 가곤 했다. 어째서 밤이었던가. 아마도 육아를 일절 돕지 않는 배우자의 저녁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천방지축 내 단도리를 해서 세탁물을 들고 나오면 이미 달이 뜬 이른 밤이 되어버렸을게다. 나는 밤산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엄마도 나와의 집 밖 나들이를 좋아했던 듯 싶다. 엄마의 걸음걸이는 평소와 달랐으니까. 엄마의 팔 흔들기는 평소보다 더 각도가 컸으니까. 여름 밤 짧고 통통한 다리로 부지런히 걸어 세탁소 에 도착하면 세탁소 특유의 섬유 냄새와 슉슉 김이 나는 다리미, 그 커다란 다리미를 잡고 슥슥 빠르게 커다란 옷들을 다려 내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정말 내 관심사는 딴 데 있었다.
어두운 밤을 빛내는 붉은 조명의 옆 가게들.
더운 여름에 새하얀 슬립만 입고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앉아 있는 정말 예쁜, 새하얀 얼굴의 언니들. 그들의 낭랑한 웃음소리. 왜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 왜 저렇게 늙고 술 취한 아저씨들을 상대하고 있을까? 늙고 술에 취해 아무말이나 소리치는데. 어여쁜 언니들은 그 말도 안되는 개소리들을 귀기울여 듣고, 때로는 맑은 목소리로 까르륵 웃어주기까지 한다. 어린 마음에 늘 의문을 가졌다. 저게 진짜 재밌나? 저 아저씨가 언니의 하얗고 가는 팔을 함부로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세탁소 부부와 이야기하는 엄마 등 뒤에 반쯤 몸을 숨기고, 고개를 길게 빼고는 흘끔흘끔, 붉은 가게 안을 보곤 했다.
붉은 조명. 유리로 된 벽. 붉은 조명 아래 앉아 있는 뚱뚱하고 무섭게 화장한 포주 아줌마... 당시에는 이런 것들의 의미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뭔가 금기시된, 대놓고 쳐다보면 안될 무언가가 그 곳에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 금지된 무언가를 스쳐가면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먼 길 심부름을 갔다올 때 꼭 그 홍등가 앞을 지나서 오곤 했다. 안 보는 척 눈을 흘끔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서.
그리고.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밤에 속한 사람들.
밤에 활기를 띠고,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엄마 심부름으로 홍등가 근처에 있는 동네 수퍼마켓에 갈 일이 생겼다. 이미 나는 초등 고학년으로 세상에 알만한 것들을 많이 알았다, 홍등가도 대충 뭔지 안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장미>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밖으로 쑥 하고 나왔다.
주근깨가 다닥다닥 눈이 맑은 어린 여자였다.
그는 <장미>에 딸린 작은 문에서 나와 쓰레기를 주섬 주섬 모아 봉투에 그러모았다.
바나나핀으로 높게 틀어올린 그의 머리카락은 가늘고 섬세했고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장기없는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는 <장미>안에서 그를 향해 소리치는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며 쓰레기를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져다 가만히 두었다.
그의 가만가만한 손길, 쓰레기 버리는 곳을 정확히 지키던 그 태도를 생각한다.
나는 뭔가를 단단히 잘못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 죄책감은 단단한 돌처럼 내 몸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 어린 여자의 눈, 세상을 담고 있던 그 말간 눈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