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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17. 2022

간나콩 씨아시야, 그릅에 심어

강낭콩과 상추와 배추벌레가 자라는 베란다


"간나콩 씨아시야. 그릅에 심어."


아기의 말을 번역해보자면, 자신이 유치원에서 강낭콩 씨앗을 가져왔고, 이 것을 그릇에서 미리 발아시켜 화분에 심어달라는 거다. 

나는 야근이 잦은 배우자를 대신해 자식 둘을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자식과 나 자신을 돌보는 것만도 벅찼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주그냥 징글징글했다. 강낭콩 한 줄기조차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밥에 얹어 먹자, 그것도 의미 있다', '네가 물 줄 거 아니잖냐, 엄마는 키울 자신이 없다'는 말을 주워섬겼지만 아기는 뾰족한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조금 더 심기를 거스르면 발 구르기가 나올 터였다.

결국 젖은 솜에 둬서 움트게 한 강낭콩 세 알을 나뒹굴던 화분에 쿡쿡 박아 심었다. 아기는 흙을 사방에 뿌리거나, 물조리개에 든 물을 내 바지에 쏟거나 하며 도왔다.


별 정성을 쏟지 않았는데도 강낭콩은 3일만에 떡잎이 흙을 뚫고 나왔다. 물만 주면 줄기에 비해 좀 넘친다 싶을 정도로 큰 잎을 당당하게 쫙쫙 펼쳤다. 재밌었다. 강낭콩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매일 밥하고 치우고 아기를 씻기는 지지부진한 삶에서 새 즐거움으로 돋아났다. 


그렇게 홈 가드닝에 관심이 생겼다. 집 앞에 5일장이 설 때마다, 근처 상설 시장에 갈 때마다 모종 구경을 하면서 다녔다. 세상엔 온갖 모종이 있었다. 청치마 상추, 적겨자, 청겨자, 꽃상추, 쌈배추, 오이 고추 등등 내가 좋아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나는지도 몰랐던 모종들이 4월의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나간 배우자가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한가득 들고 왔다. 봉지를 열어보니 쌈배추 모종이 10개나 들어 있다. 이거 왜 사왔냐고, 누가 키우냐고 물으니 싱글싱글 웃으며 이 거 당신 좋아하는 거잖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쌈배추는 시장에서 예쁜 속잎만 골라 흙 탈탈 털어서 바구니에 담아 둔 거다, 베란다에 아직 스티로폼 텃밭 늘어놓고 더럽힐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무턱대고 열 개나 사오면 어떡하냐 난 모른다 아무리 소리를 쳐 봐도 식탁에 놓인 쌈배추 모종이 어디를 가겠나.

며칠을 모종과 눈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앞베란다를 깨끗이 정리했다. 재활용쓰레기 모으는 곳에 뒀던, 속이 깊은 스티로폼 상자도 씻어서 잘 말렸다. 다음날 홈플러스에서 배양토 큰 포대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왔다. 배양토 진열칸 바로 옆에 있던 상추 씨앗도 샀다. 강낭콩 씨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나니 상추도 알아서 잘 자랄 줄 알고 용기를 내 본거다. 지금 베란다에는 쌈배추 모종 한 줄이 심긴 스티로폼 상자 하나, 바질 화분, 강낭콩 화분, 상추 씨앗이 심긴 스티로폼 상자 하나가 해가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고 쫄로리 있다. 매일 흙을 만져보고 말라 있으면 물도 주고 바람도 쐬어주었다.


"엄마! 이거 봐! 싹 올라왔다!"

6시 반, 아직 혼곤한 잠에 빠져있는 엄마를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는 통통한 손을 느끼며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렸다. 강낭콩 심고 나서 매일 아침 베란다로 나가는 버릇이 생긴 아기가 마침내 흙을 뚫고 나온 상추 싹을 발견한 것이다. 너무너무 작아서 흙에 거의 눈을 박듯이 하고 봐야 보였다. 무거운 흙을 그 여린 싹이 밀고 올라온 것이 대견해서, 기특해서 주책없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한 번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니 무더기로 떡잎들이 우수수 밀고 올라왔다. 올라오다 지들끼리 밀치고 부딪히고 해서 꺾이는 놈들도 있었다. 바질 씨앗은 다섯 알 심었는데 상추가 싹이 나고도 한참동안 작은 잎조차 나오지 않아 아기와 내 속을 태웠다. 그러다 며칠 전에서야 겨우 조그만 떡잎을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먹거리를 직접 키워보니 장날에 나와있던 두껍고 탄탄하게 자란 꽃상추, 끝이 구부러질 지경까지 길게 자란 오이 같은 것들이 함부로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빛과 물과 정성이 들어갔을지. 지금까지 장에서 모양이 어그러진 것이나 조금 시든 부분을 갖고 있는 야채들을 외면하고 흠 하나 없는 것만 고르려 생각해왔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야간에 고등학생 입시 수업을 하며 돈을 버는 과외 교사다. 이번에 고 1 수업 준비를 하면서 3월 모의고사에 출제된 이문구의 <산 너머 남촌>을 읽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영두란 인물이 밭작물을 도매상에 팔려고 한다. 그런데 도매상은, 이렇게 잘 길들인 밭에서 깨끗하게 자란 채소는 서울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한다. 마치 새로 야산 개간을 해서 심은 무공해 채소처럼 보이도록 붉은 흙을 일부러 묻혀 놔야 잘 팔린다는 것이다. 결국 헐값에 열심히 키운 채소를 넘기게 된 영두는 쓴웃음을 지으며, 벌레가 조금만 갉은 자국이 있어도 칠색팔색하며 달아나던 대도시의 풋내기 소비자들을 떠올린다. 


나 또한 그런 풋내기 소비자였다고 고백해본다. 이파리 끝까지 벌레 먹은 구석 하나 없는 야채만 골라 사려 했다. 밭에서 새벽에 캐 와 오후쯤 되면 시들해지는, 신문지에 마구 부려 놓고 물건을 파는 5일장에서는 물건을 잘 고르려 하지 않았다. 홈플러스에서 비닐백에 포장된, 반질반질하고 파릇파릇한 채소를 사려 했다. 직접 채소를 키워보고서야 생명을 기른다는 것, 그것도 흠없이 기른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아마 더 키우다보면 상추에 벌레도 생길거고(농약 안 치면 손바닥만한 밭뙈기에도 벌레가 생긴다 한다) 배추에도 그러하겠지. 벌레라면 칠색팔색을 하는 나라도 이번엔 좀 견뎌볼까한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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