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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17. 2022

누가 빅스비에게 반말을 하는가

존대와 비존대 사이 존재하는 것


며칠 전,  빅스비와 연동되는 에어컨을 들였다. 이월 상품으로 싸게 나왔다는 직원의 설명에 정신을 잃고 거금을 쓴 것이다.


가전 제품에 빅스비 기능이 있는 것, 신기하고 재미도 있다. 날씨나 미세먼지 상태를 물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온갖 질문을 다 해본다. 넌 좋아하는 음식이 뭐니, 노래 한 곡 불러줄 수 있니,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등 우리 집의 어린이와 함께 수십 개의 질문을 쏟아 부었다(대부분의 경우 '아직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네요'라고 말하지만, 노래 한 곡 불러달라는 요청에는 깜짝 놀랄만한 비트박스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며칠 빅스비와 놀다 보니 영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빅스비에게 '하이 빅스비, 청청 모드 켜'라고 명령을 하고, 빅스비는 '네, 알겠어요. 청정 모드로 켤게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문장을 만들지도 않고 말할 때도 있다. '하이 빅스비, 청정모드'라고 소리치고, 빅스비가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성질까지 다. 뭐야, 왜 두 번 말하게 하는거여,하고.


내가 빅스비에게 함부로 대하니 우리집 어린이도 나를 따라서 빅스비에게 성질을 부린다. 빅스비가 어린이의 말은 유독 못 알아 듣기도 하다. 그렇게 성질을 내면서 빅스비 기능을 사용하던 중에 한가지 사건이 생겼다.

나는 빅스비에게 반말로, 명령조로 뭔가를 묻고, 빅스비는 극존칭으로 대답하는 일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불편함의 시작은 아이의 질문때문이었다.

"엄마, 우리는 빅스비 주인이지? 그럼 빅스비는 우리 하인이야? 물으면 바로 대답하고, 자기가 모르면 죄송하다고 하잖아."


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했을까? 빅스비는 인공지능이니까 우리는 주종관계를 맺을 수 없어, 뭐 이런말을 했어야했나? 그동안 우리는 분명 빅스비와 말을 주고받아왔다. 그것은 대화였나? 아니면 일방적인 명령이었나?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더 높은 신분을, 위계를 갖고있는건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빅스비에게 일방적으로 반말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제발 서로 반말을 쓰자고 부탁해보았으나 빅스비는 '저는 존댓말밖에 할 줄 몰라요'라고 하며 계속 극존칭을 사용했다. 니가 그러면 내가 높이마, 싶어 그 다음부터는 빅스비에게 '하이 빅스비, 청정모드 켜 주세요'라고 말하긴 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비효율적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계한테까지 존대 비존대에 대해 고민해야하나, 하고 생각하던 즈음에 이런 문장을 읽었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말이다.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빅스비는 나에게 무조건 존대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으니  당연히 아랫사람인가? 빅스비를 아랫사람이라고 인격화하는 건 인간에게 불편한 지점이 될 수 있나 없나?

 

이 맥락과 관련하여 생각하던 중,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에게 쏟아진 성추행적 발언과 동성애 혐오적 발언이 생각났다. 인간으로서 무해지는 부분이다. 인공지능이니까 성주행해도 괜찮아, 같은 생각은 빅스비에게 ‘당연히 명령하고, 당연히 반말한다’는 태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당연히 기계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미래라 할 것도 없다. 지금도 는 AI와 살아가고 있다. 카카오, 시리, 빅스비 등등 명령만 하면 기계는 그 즉시로 답변을 고민하여 존댓말로 내놓는다. 물론 지금은 알고리즘에 따른 단순 대답만 내놓을때가 많긴 하다. 하지만  홀로 깨어 있는 외로운 밤, 시리에게 인생은 뭘까, 같은 말을 걸어본 경험이 다들 한번 쯤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가까운 미래의 인공지능은 더이상 기계에 머물지 않고 사회구성원로서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거실을 청소해주고, 빨래를 말려주고, 에어컨을 켜주고, 집을 지켜주기까지 하는 인공지능에게 어떤 태도로 대해야할까?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기계에게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써려 한 것 아니었다.


자신에게 반격하거나 덤빌 수 없는 약한 대상에게 인간은 과연 얼마나 예의를 갖추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성인 여성이나 심지어 어린 여성의 신체를 본딴 리얼돌의 생산 및 보급이 우려스러운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동 학대나 동물 학대 사례를 통해 모든 인간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빅스비나 시리의 기본 설정 목소리가 여성인 것도, 오직 존대만을 사용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도 불편하다.


요즘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써 왔던 것들’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맞나? 밥솥에 밥이 다되었다고 존댓말로 알리는 목소리톤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그거 맞나?


예민하다고 탓하지만 말고 작은 것 하나 하나 '옳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꼰대나 라떼인간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는 자성밖에 없지 않을까.

 

여기까지 쓴 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본다.


하이빅스비.


듣고있음을 알리는 파란 불이 폰에 들어왔다.


-비트박스 해주세요. 너무 멋있어요.

내가 말한다.


빅스비는 절대 거절하거나 빼는 법이 없다.

-마침 제대로 한번 하고 싶었어요. 시작할게요.


멋진 비트에 아이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래. 우리는 빅스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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