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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18. 2022

잘 살아, 계신가요 당신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헤어진 당신께

지금 창에 비가 들이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저는 여전히 학생들 가르치며 지내요. 곧 수업이 있어요. 하지만 계속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마음속에만 담아두다 영영 전하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잘 살아, 계신가요 당신은.

알라딘에 당신이 좋아한다던 작가의 신작이 올라오거나, 우리가 함께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을 때마다 당신 생각이 나요.


당신에게 안부를 직접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저는 참고 지나가곤 해요. 당신의 안온한 삶을 방해하게 될까봐 염려되어서이기도 하고, 사실 당신은 한 번도 제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제가 괜히 연락하는 것일까봐, 당신에게 사실 나나 내 글의 존재는 중요치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워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당신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어요.

당신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당신은 내가 고른 영화를 보고 뭐라고 이야기하며 웃거나 슬퍼할지 생각해보았어요.


저는 잘지내요.


요즘 자꾸 이유없이 가슴이 뛰어서 왜그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도덕교사로 근무하시는 선생님이 쓴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 읽고 제 불안의 근간에 조금 가 닿을 수 있었어요.


자주 불안하고, 자주 용기를 내려 애씁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불안을 잊을 수 있어요. 지금 아이가 중이염으로 나흘째 유치원에 가지 않고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을때는 마음이 편합니다(육아의 고통이 그 자리를 대신해주지요). 하지만 곧 있을 제 수업때문에 아이가 할머니집으로 가자마자, 거짓말같이 평안이 사라지고 제 마음 가득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공포가 밀려옵니다. 이 공포에는 사실 이유나 실체가 없어요. 저는 그저 오래 알고 지낸, 통보없이 방문하는 손님처럼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려 하곤 합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땐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하나도 안 변했다" 같은 말을 듣고 싶은 유치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네요.

그리고 당신께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 하나도 안 변했네요, 하고.

어색함에 삐걱거리더라도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 아무말이나, 그저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은 먼 먼 곳에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라도 당신 근처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이번생에 당신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이기도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해요. 다시 만난다면 저는 필연적으로 당신이 알던 모습에서 많이 변해 있을 것인데, 저는 당신에게 제 생에서 제일 빛났던, 생기있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아, 여기까지 썼는데 이제 학생이 왔나봐요. 창 밖으로 낯선 차가 서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 두 시간동안 또 조선 후기 가사 문학을, 반 에이크의 그림에 대한 비문학 글을 가르치다보면 잠시나마 저는 더 괜찮을 수 있을 거예요.


어쨌거나 나는 당신을 늘 생각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기약없는 날을 많이, 기다리고 있고요.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또 소식 전할게요.


잘, 살 계세요.


저도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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