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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24. 2022

브런치 세 번 넘게 떨어진 사람

나 말고도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청서에 성심성의껏 적어주신 내용을 고심하여 검토하였으나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모시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 받았다. 정중한 거절. 그래서 더 가슴을 후벼 파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 파트가 제일 따갑다. 아니 (심한 말) 글 세 개 밖에 첨부 못하는데 (심한 말) 그거 가지고 어떻게 내 미래 활동을 (심한 말) 평가하실 수 있나요. 아 제발 더 잡솨봐. 다른 글도 있어요. 혹시 잘할지도 모르잖아. 엉엉.


처음 브런치 도전할 때, 이런 플랫폼이 있어서 작가 신청해보려고 한다, 하면서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 그래?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같이 신청했던 그 친구는 단번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속내는 다 알 수 없지만 얘는 캐주얼하게, 되든 말든, 이런 식으로 신청했는데도 바로 작가 선정이 됐다. '쉽던데?'라고 선정 후기 들려주었다.

 

하. 내가 너무 비장했나.

너무 매달리는 것 같아서 구질구질해 보였나.

신청 폼에 중년 여성으로서 아기를 키우며 살아가는 우울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독박 육아의 고초와 삶의 남루함에 대해 쓰고 싶다 꼭 쓰게 해 달라 목소리를 낼 기회를 달라 뭐 이러면서 우울한 글 세 개를 첨부했더니 바로 떨어졌다.

내 삶이 구질구질한데 어떻게 해. 아 그럼 어떤 글을 써야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판단받을 수 있는 거냐고. 우울하고 너절한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 같아서 한 일주일 적극적인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브런치 욕을 하고 다니면서(야! 브런치는 암울한 육아 얘기 같은 거 싫어하는 곳이다! 그럼 아줌마들은 대체 어디서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냐! 같은 말들로).

그러고 한동안 브런치를 쳐다도 안 봤다. 실패를 잘 인정하지 못하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래도 혼자 조금씩 계속 썼다. 실패의 경험을 딛고 이번엔 좀 다른 이야기들을 썼다.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 책을 보고 위로받았던 것들을 주로 썼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조금씩 썼다.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때쯤(대략 3개월 정도 걸렸다) 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이번엔 지난번보다 좀 더 정성스럽게 작가 소개를 쓰고 목차 선정을 했다. 주요 내용은 기혼 여성 입장에서 쓴 책 리뷰였다. 그때 내 삶을 흔들었던 책들-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타인의 고통, 시선으로부터-을 읽고 기혼 여성의 관점에서 생각한 바를 퇴고 백 번 해서 첨부해 보냈다.

결과는 나흘 만에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깍듯한 거절 메일이 받은 메일함에 꽂혀있었다.

독이 올랐다. 바로 다시 작가 신청 글 올렸다. 이번엔  중년 기혼 여성의 입장에서 본 영화 리뷰. 작가 소개가 문젠가 싶어 시골에 살면서 프리랜서 활동하며 애 둘 키우는 사람으로서 어쩌고저쩌고  특이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다시 썼다. 영화 리뷰도 내 생각 웃기다고 생각되는 것만 3개 첨부해서 보냈다.

나흘 지나 또 같은 내용의 메일. 이젠 익숙해서 정겹기까지 했다.

그래. 그래도 브런치는 매너 있는 거야. 다른 공모전 같은 데는 떨어지면 연락 안 주잖아. 그런데 브런치는 얼마나 친절해. 무한정 안 기다리게 나흘 만에 꼬박꼬박 답장을 준다구. 걱정 마. 나 아직 쓴 거 더 있어. 불합격 메일 하단에 <재신청하기> 버튼 또 눌렀다.

이번엔 단편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지금은 아주 싫어한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온 세대로서 TV피플 같은 류의 내용으로 써 둔 단편이 개 있었다. 저녁에 신비 한 모금, 뭐 이런 제목으로 목차를 짰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 기묘하고 전기적인 글을 읽음으로써 잠시나마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썼다, 이렇게 소개글을 올렸다.

결과는 또 나흘 만에 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아니구나.

대체 무슨 글을 써야 브런치 발행이 가능한 건가? 암튼 내가 쓰는 글은 요즘 트렌드는 아니구나.

그렇게 또 브런치를 몇 달 내버려 뒀다. 글도 잘 안 썼다. 써봤자 뭐해,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 혼자 읽고 말 글을 써서 뭐해. 이번 생에서 작가는 못되나 보다. 실속 없는 희망 따위 버리고 살림이나 똑바로 하자. 그놈의 글 쓴다고 밤에 잠 안 자고 피곤하게 뭐하러 그랬나.


그러다 활동하고 있는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김필영 작가님 강의를 신청해 듣게 되었다. 작가님께서는 매주 한 편씩 글쓰기 숙제를 내주셨다. 써낸 글은 꼼꼼히 읽어봐 주셨고, 세세히 첨삭도 해주셨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주셨다. 좋은 문장은 소리 내어 읽어도 주셨다.


아. 어쩔 수 없이 또 쓰고 싶어졌다. 내 글을.


작가님이 읽어주시고, 잘한다 해주시고, 앞으로 이렇게도 써보라고 코칭까지 해주시니 어쩔 도리가 없다. 주어진 숙제를 안 하거나 미루지 못하는 스타일이니까. 글쓰기 숙제를 내주셨으니 숙제를 하자.

그렇게  다시 조금씩 글이 쌓이기 시작했다.

6주 차 강의가 진행되던 중 작가님께서 다른 숙제를 내주셨다. 혼자 글 쓰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있으면 더 좋다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보라셨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여기 브런치 네 번 떨어진 사람 있어요, 하면서. 저는 브런치랑 안 되는 사인가 봐요.

그래도 진짜 사람이 천성은 못 버린다. 숙제를 내주셨다=숙제를 해야 한다, 이 도식이 자 도출됐다. 하. 이번엔 무슨 주제로 떨어져 볼까.

그러다 최근에 불안/강박증으로 상담받기 시작한 일이 떠올랐다. 그 상담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도.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었는지도. 어디서 그 용기를 끌어왔었는지도.

상담받기까지 아등바등했던 시간들이 그냥 내 안에 고여있는 것보단 어디로라도 흘러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썼다. 브런치에 새 작가 소개를 썼다. 내 안에 있는 강박과, 불안장애로 상담받기 시작한 내용을 샘플 글로 써서 냈다. 어차피 떨어져도 괜찮아, 나는 숙제를 한 거니까, 하고 자위하면서.


 나흘 만에, 결과가 왔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면 메일 제목부터 다른 것을 이때 알았다. 메일 제목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까 기쁘거나 놀랍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응? 브런치가 미쳤나? 했다. 나 아니라며. 네 번이나 아니라며!

 일단 작가 선정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어서 며칠 놔둬봤다. 그런데 아무래도 진짜, 이번엔  된 것 같았다. 그때서야 아끼는 탁상달력에 작게 빨간 볼펜으로 써놨다. 브런치 작가 선정됨, 하고. 작은 하트도 그렸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쓰고 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기니 하루도 안 빼고 뭐라도 쓰고 싶다. 그런 마음이 생기니까 정말 매일 뭔가 쓸 얘기가 생겼다. 빨래하는 일부터 요가원 가는 일까지 하나도 허투루 넘지 않고 문장으로 옮겨놨다. 시간을 문장으로 옮기니 내가 제일 기뻤다. 하루도 함부로 지나간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매일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으니, 할 말도 아직 남아 있다.

주어진 날들이 끝날 때까지 결국은 계속 쓰고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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