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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Mar 07. 2023

장기하라는 장르

장기하와 함께하는 헤드뱅잉

요즘 아이들과 장기하 노래를 자주 듣는다.

'그건 니 생각이고'를 설거지하면서 틀어 놨었는데 6세의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었나보다. 아침마다 '이길이 내 길인 줄...하면서 시작하는 노래 틀어줘, 네 생각만 맞는 거 아니라고 하는 노래 틀어줘'한다. 하도 듣다보니 이제 가사까지 다 외워서 떼창이 가능하다. 첫째 둘째가 헤드뱅잉하면서 장기하 노래를 열창하는 우리집의 아침 시간.

첫째 아이는 처음엔 장기하 목소리가 웃기다고, 이상하다고 하더니 며칠 전부터 '거절할 거야'를 자기 최애곡으로 꼽았다. '거절할 거야'는 나도 참 좋아하는 곡이다.


마침내

그날이 와버렸네

오래 오래 오래 오래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네

난 정말

참을 수 없었나봐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랬나봐

지쳐버렸나봐

지나치게

걱정을 했었나봐

나쁜 나쁜 나쁜 나쁜 나쁜 사람 될까

두려웠었나봐

이젠 아냐

혹시나 니가 나를

착한 착한 착한 착한 착한 사람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절할 거야

아무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해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아무리 네 얼굴이 어두워져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거절할 거야

아무래도

역시 나는 안되겠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상상

해 보려고만 해도 막

입꼬리가 완전히 딱

굳어버리려고 하는데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오늘만은 내가

반드시 니 부탁을

거절할 거야

아무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해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아무리 네 얼굴이 어두워져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아무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해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아무리 네 얼굴이 어두워져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거절할 거야


내가 '거절~!'하면서 선창하면 자식 두명이 한꺼번에 '할거야!'를 큰소리로 이어 부른다.

'아무리 네 얼굴이 어두워져도 내가 내키질 않으면 거절할 거야' 부분을 이어 부르다 보면 늘 가슴이 찡해지고만다. 내 찌질하고 초라한 마음을 이렇게 단정한 노래로 부를 수 있어서인가보다. 장기하 노래에는 늘 그런 찡-한 부분이 있다.

하도 애들이랑 내가 장기하 노래에 열광하니까 배우자가 으이구, 하는 표정으로 '장기하는 약 하면 안될텐데..' 하며 걱정 한다. 지금까지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마약을 해서 떠나보내고 슬퍼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신춘문예 다 떨어지고 혼자 차에서 장기하 노래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들었던 노래는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였다. 드럼비트 빵.빵.빵.빵 매기면서 시작하는 펑키 뮤직인데 그걸 들으면서 울었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럴까 나는!!! 하면서.


아무튼 장기하는 사람한테 툭, 던져주는 뭔가가 있다.

<싸구려커피>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충격,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장기하 노래를 한 곡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런 격동을 느끼지 않을까.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미노이의 요리조리에 나온 장기하에게 미노이가 묻는다. 그렇게 말하듯이 노래하면 싱크가 항상 맞냐고. 장기하는 답한다. 그럼. 내 머릿속에는 나름대로 악보가 있어.

그 말을 들으면서 역시 천재군, 했다.

 

벗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장기하는 이제 하나의 장르지.


그래서 우리집엔 지금 장기하라는 장르가 흐르고 있다.

이 글 다 쓰면 '등산은 왜 할까'를 틀어놓고 애들과 에어기타를 치면서 헤드뱅잉을 할 예정이다.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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