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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Mar 19. 2023

삶이 힘들 땐 이 커피 한 잔 잡솨

혀가 얼얼해지는 인스턴트 파워

* 이거슨 절대로 제품 광고 아님을 밝힙니다아.



뭘 해도 힘 빠지는 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못 나가겠다 싶은 날.

온몸이 물 대충 적신 걸레처럼 축축하고 너덜너덜한 날.


나는 찬장에 숨겨 둔 코피코 블랑카 한 팩을 꺼낸다.

빵빵한 팩

탈지분유와 설탕, 인스턴트커피 가루가 손바닥만 한 봉지 가득 들어있는 코피코 블랑카.

뜨거운 물이나 우유 쬐끔에 콸콸콰로칼칼콸코랔콸 부으면 가루가 컵 입구까지 수북 올라올 정도다. 잘 저어 한 입 마시면 연유맛 프리마 맛 분유맛 설탕맛이 입 안 가득 촥 퍼진다. 강렬한 단 맛에 혀가 얼얼할 지경이다.  


하루 종일 혼자 육아를 책임져야 할 때-특히 아픈 아이들을 온종일 집. 안. 에서 케어해야 할 -이만 한 만병통치약이 없다. 애 둘이서 끊임없이 소리 지르며 싸워대는 통에 혈압 빡 올라올 때, 이 커피 한 잔이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기 위해 단맛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단 맛은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을 즉각적으로 좋아질 수 있게 만든다.

현생 인류인 나는 진화 과정 가운데 있나 보다. 대자연이 덮치기 전이나 아이들의 밑도 끝도 없는 컴플레인에 지칠 때 가장 빠르게 나를 건져낼 수 있는 건 이 인스턴트커피뿐이다. 정제 설탕의 단맛에 버무려진 카페인이 주는 고양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아침, 육중한 내 육신을 일으켜 세워 애들 옷 갈아입히고 밥 차리고 먹이고 이 닦이고 가방 챙겨 등교시키게 만드는데 이만한 에너지원이 없다.

뜨거운 여름, 커다란 유리잔에 얼음 가득 채워 블랑카 두 팩 때려 넣은 후 와르르르륵 섞어 먹으면 바로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인스턴트 파워가 확 솟는다.


3월, 애들 개학과 내 새로운 수업을 견디기 위해 10개들이 코피코 블랑카 믹스를 세 통이나 샀다. 도합 서른 개.

아-무도 안 주고 나 혼자 아껴 먹어야지. 그럼 3월을 조금이나마 웃으면서 버틸 수 있을 거다.


오늘도 너무 고생했으니 한 봉 시원하게 잡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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