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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Mar 31. 2023

끝끝내 불리하리란 법은 없다

얼마 전 송윤아의 제주 카페를 방문한 김혜수 배우가 이런 말씀을 했다.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면, 모든 상황이 나한테 죽을 때까지 불리하지만은 않거든."


오늘 3달 만에 글쓰기모임을 가졌다. 혹독한 1, 2월을 겪고 살아남아 잡은 만남이었다. 아이들 방학 동안 우리는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신춘문예에 낙방해서, 불안과 강박에 치여서, 일상과 돌봄에 치여서 소설의 ㅅ에도 가까이 가지 못했던 나날들을 보내다 겨우 시간을 내어 우리의 욕망에 대해 말할 시간을 가진 것이다.


엄마의 욕망, 여자의 욕망은 내놓고 말해지기 꺼려지는 것이다. 특히 어린애를 돌보고 있을 때 엄마의 욕망은 쉽사리 억눌러지고 무시된다. 지금 애 키우는 게 중요하지 돈도 안 되는 글쓰기가 뭐가 중요해. 아줌마들 모여서 놀 핑계지. 이런 판단을 쉽게 듣게 된다.


하지만 애 엄마이자 사람인 우리는 오늘 만나 애 얘기는 단 하나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쓰지 못한 글, 쓰고 싶은 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용히 앉아 공책에 글 쓸 시간, 쓴 글을 노트북으로 옮기는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다. 우리에겐 글 쓸 시간과 장소가 절실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치여 그 절실함을 조금씩 잃어갔다. 오늘 모임은 그 절실함을 다지기 위해 만난 거였다.


반드시 써야 한다, 우리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고여 있다, 이 걸 퍼내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만나서 우리만의 마감을 정하고 마감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쓰다 보면 정말 나만의 소설을 몇 편이고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책등에 내 이름이 찍힌 한 권의 창작물을 가지게 되고야 말지 않을까. 김혜수 배우님의 말씀처럼 계속 공부하고 쓰다 보면 글쓰기라는 영역에서 끝끝내 불리하지만은 않지 않을까.


소설을 쓰고야 말 것이다. 쓰고 또 쓰면 뭐라도 건지게 된다. 내가 존경하는 최고현희 선생님의 에세이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글쓰기는 자전거 같은 거야. 계속 써야 써지는 거야. 많이 쓰면 그중 몇 개 건질 만한 글이 나오는 거고. 그걸 엮어서 책을 만드는 거야."


나의 갈망은 내가 창조해 낸 소설 속 세계에서 마음껏 유영하다 마침내 잘 놀았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면서 깔끔히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다른 사람에도 내어놓고 여기서 재미있게 놀아보세요, 물 좋아요, 하고 울타리를 터주는 것이다. 그 세계를 나름의 질서로 잘 정돈해 둠으로써 다른 사람이 와서 여기 놀만하네, 시간을 내어 올 만하네 하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은 날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독자가 상정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마감은 2주 뒤로 잡혔다. 그때까지 원고지 40매 분량으로 뭐라도 쓰는 게 목표다. 초안은 이미 잡아뒀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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