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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pr 04. 2023

맷집이 좀 있어야 삶도 살아진다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뒤집어지는 내 마음이 너무 싫다. 평안이 깨지는 역치가 너무 낮다. 맷집이  너무 없다. 맷집이 좀 있어야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아이가 며칠째 고열이 나고 아프다. 덕분에 병원을 자주 드나들게 됐는데 넘치는 환절기 환자들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품이 그런 건지 불친절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의료진들의 태도에 너무 기분이 상하고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다. 별 미친놈 다 보네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작은 무례에 마음이 심하게 일렁이는지. 


둘째의 고열이 밤새 내리질 않아 독감이랑 코로나 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무섭다고, 아플 거 같다고 도리질 치며 울었다. 어른이야 참고받았겠지만 애 입장에선 여린 코 깊숙이 면봉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무섭겠는가. 게다가 기껏해야 1~2분 지체됐을 뿐이다. 하지만 검시관은 그 1분이 참을 수 없이 짜증 난다는 듯 하... 한숨을 쉬면서 고개 돌리며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 검시관은 내가 덩치 큰 남자였어도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을까.

선별검사소가 열리는 9시가 되기까지 고열에 벌벌 떨며 텐트 앞에서 기다린 아침 첫 환자, 입술이 파래지도록 아픈 어린이 환자에게 그런 태도를 취한 그 사람.

문제는 그 사람일 텐데 왜 내 마음이 뒤집어지는지.


결국 둘째는 A형 독감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일주일간 내 모든 일정은 간단히 취소되었다. 영어스터디, 요가, 글쓰기, 수업 모두. 어린이의 질병 앞에서 내 일정은 너무나 쉽게 취소되고 일상이 무너진다.


그런데.

그래도.

 내 마음의 한 부분에선

다행이다, 그래도 다행이다.라고 한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그만해서 감사하다라고 말한다.

나도 모른다. 내 여러 자아 중 힘이 센 자아가 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선, 작은 감사가 숨어 있었나 보다. 내 안엔 그런 감사를 할 줄 아는 애도 있었나 보다.

감사하다는 말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걸 보니.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내 사명이자 소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사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잘 감당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그러고 보니 소소한 친절들도 있었다. 링거를 꽂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며 우는 둘째를 딱하게 여기며 좋은 말들로 달래서 링거를 꽂아준 간호사 선생님, 둘째가 좋아하는 비타민 사탕을 약봉지가 넘치도록 담아준 약사 선생님도 계셨다.

친절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불친절한 사람도 그렇긴 하지만.

아기가 아픈데 내 마음 하나 감당 못해서 끙끙댈 수는 없다.

감사를 붙들기로 한다.


이만하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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