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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pr 08. 2023

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집

인간이 겪는 나이 듦의 단상은 정말로 다르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나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체의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자주 자책하는 사람이었다.

신체와 정신의 불일치감을 잘 못 받아들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 상황을 설명해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성들의 전성기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 시기로 본다면, 여성들 외모를 중심으로 20대를 전성기로 이야기한다는 것.

여자의 전성기는 결혼하고 임신해서 애 낳기 전, 소위 몸매가 망가지기 전, '아줌마' 같아지기 전이 된다는 것.


나도 내 몸을 결혼 전, 임신 전 가장 날씬하고ㅡ건강했던 상태를 기본값으로 두고 조금씩 떨어지는 체력과 둔탁해지는 몸 라인을 '비정상'로 인식했다. 나이 들며 자연스레 일어나는 근손실이나 지방의 축적 몸을 돌보지 않은 게으름으로 인식했다. 내 몸이 내 삶인양, 자책하는데 간을 많이 썼다.

특히 이렇게 아픈 상태 ㅡ 일주일 우리집독감이 휩쓸고 지나갔다 ㅡ 가 덮치고 나면 아, 옛날엔 이렇게 안 아팠는데, 금방 나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10년 전의 내 몸을 열망하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현실을 사는 진짜 내 몸상태와의 격차를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내 몸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다. 20대 때보다 몸무게는 늘었지만 운동은 훨씬 많이 다. 요가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었고 자전거 타는 법도, 수영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20대의 어느 날보다도 게으르지 않게 살았다.



이제 아이들 독감 증세는 한풀 꺾였다. 아프다고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아침 첫 진료를 기다리던 시간들, 39도 가까이 열이 끓는 아이를 밤새 돌봤던 시간들, 누런 콧물을 끊임없이 풀어줬던 시간들이 쌓여서였다. 시간은 허투루 흐르지만은 않았다. 몸을 깎아먹는 방향으로만 흐르지도 않았다. 시간은 정직하게, 아이들을 돌본 열심을 쌓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열심이 독이 되었는지 아이들이 건강을 조금씩 되찾자, 일상을 영위해 가려 팽팽하게 날 섰던 긴장이 풀어지며 어제부터 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근육통과 오심, 고열로 밤새 잠 못 들고 아프다, 너무 아프다를 되뇌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몸이 잘 견뎌주었다고. 애들 아플 때 같이 아프지 않으려 정말 애썼다고, 대견하다고. 낡아가는 몸으로도 이렇게 잘 해낼 수 있었다고.


결국 A형 독감 양성 판정을 받은 나 때문에 배우자의 토요일 출장이 취소되고 나는 방안에 박혀 죽을듯한 기침과 함께 쿨럭쿨럭쿠릴루리러러걱대고 있지만.  글을 무슨 정신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내 몸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휴.

이제 당분간은 독감 안 걸리겠지.

아프긴 진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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