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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pr 18. 2023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오늘 한 학생이 갑자기 수업을 그만뒀다.

시험기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논술 강사로서, 수학이나 영어 내신의 무게에 내 수업이 밀려나는 일을 빈번히 겪었다.

하지만 겪을 때마다 뼈아프다.

오늘은 심지어 수업 당일날 그만두겠다고 학부모 통해서 연락을 하고, 마지막 수업에도 안 왔다. 인사도 없었다. 그래도 1년 넘게 가르친 아인데.


 토론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짝수로 학생 수를 맞춰야 하는 나로선 충원 유예 기간도 안 주고 자기 사정대로 그만두는 아이들이 야속하다.


이해는 한다. 본인 내신이 급하니까, 수학공부가 힘드니까 그런 거다. 하지만 수업 시작할 때의 태도 ㅡ 꼭 이 반에 넣어달라는, 논술이 너무 중요하고 국어가 중요하다는 읍소 ㅡ 와 그만둘 때의 태도가 너무 달라 인간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사교육장에서 일하면서, 관계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았다. 인이 박힐 만도 한데 왜 나는 매번 휘청이는. 그쪽은 나를 다만 학원 강사로만 대했고, 학원을 끊는 건 소비자(?)의 권리라 생각해서 당일날 그만둔다는 통보를 한 걸 텐데 나는 학생을 다만 소비자로 대하지 않고 제자라고 생각했고 매번 상대보다 마음을 더 준다. 그래서 혼자 상처받는다. 학생이 그만둔 이유를 오래오래 곱씹으면서 슬퍼한다.


오늘 갑자기 받은 해고? 통보에 마음이 잡히질 않아서, 가족들이 모인 저녁 밥상에서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통제성향이 강한 게 문제인가? 아니면 논술강사로서 경쟁력이 부족한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건가? 학생이 자기 사정 있으면 그만둘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넘기면 되는데 왜 넘기질 못하지? 왜 속상하고 내 능력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될까?"


 그러자 가만히 듣던 배우자가 한마디 했다.


"그건, 누구라도 기분 나쁠 만한 일이었어. 당신이 어때서가 아냐."


학교에서 일하는 배우자는 얼마 전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다가 쌍욕을 들었다. 그래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자는 자신이 선생자격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교통사고처럼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절차에 따라 행동했다. 나처럼 밑도 끝도 없이 본인 존재의 무가치함에 대해 천착하며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얄팍한 판 위에 내 자존감을 올려 둬서 작은 일에 사삭 깨어지는가. 잔물결에 쉬이 흔들리는가.


잡히지 않는 마음 가운데 배우자가 한 말을 붙들어본다.


그래. 이건 누구라도 기분 나쁠 만한 일이었어. 내가 잘못해서거나 부족해서가 아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아.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었음을 제발 인정하자.


하지만 아직은 잘 안된다. 이럴 땐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조금씩 무디어질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도 다를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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