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유자녀 여성으로 살면서 얻은 기쁨과 울분을 섞어 쓴 <야, 아줌마 나왔다- 아줌마 생활자 수기>를 마무리 지어 지난 주부터 투고를 시작했다. 지난번 투고 메일에 거절 메일이라도 준 출판사들을 우선으로 투고했는데, 20군데쯤 투고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헉. 망했다. 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시리즈를 출간하는 세 출판사(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에 먼저 메일을 보내려고(아무튼,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투고를 했다) 아무튼 시리즈에 맞춰서 첫 기획안을 썼었다. 그런데 그걸 수정하지도 않고 다른 출판사에도 똑같이 보낸 거다. 수정하지 않은 기획안에는 아무튼 시리즈에 소속되어 ~~~ 글을 쓰고 싶다는 내용을 구구절절 썼는데, 그 내용 그대로 다른 출판사들에 투고한 거다. 다른 출판사에선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줌마 이야기를 세상에 내고 싶다고 절절하게 써 놓고는 밑에 그래서 아무튼 시리즈로~~ 이런 설명이 적힌 기획안을 읽으면서, 이 사람 황당하네, 출판사를 알고나 보내지-했을 거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진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 너무 황당했다. 이러면 다시 투고도 못한다. 어이가 없고 쪽팔리고 억울했다. 원고 쓰고 퇴고하느라 생고생을 했는데 기획안을 이렇게 보내다니. 기획안 최종 수정할 때 한 번 더 봤어야 했는데, 드디어 글 다 썼다는 홀가분함에 눈이 멀어 기획안 수정도 않고 그냥 메일을 보낸 거다. 이슬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하도 내 글을 여러 번 들여다봐서 눈이 낡아버린 건지도. 제일 중요한 것을 놓쳤다. 당연히-아무튼 시리즈를 출간하지 않는 출판사들은 답장조차 없다.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한 며칠을 울면서 보냈다. 메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원고도 꼴도 보기 싫어서 컴퓨터 구석에 처박아놓았다.
그렇게 시간을 버리다, 적정량의 눈물이 다 흘러나와서였는지 어쨌는지 문득 기획안이라도 고쳐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산만했던 기획한 내용을 다시 수정하고 좀 더 유쾌한 내용으로 고쳐 썼다. 서문도 시간을 들여 문장을조금씩 바꿨다. 그러고 나니 다시 투고를 시작할 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간 고민고민해서 다시 정성껏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출판사 하나하나마다 내가 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중 어떤 걸 읽었는지, 읽고 나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부분이 내 글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는지를 먼저 썼다. 그러고 나서 내 글을 소개하고 기획안을 첨부했다.
그렇게 하니 답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투고할 때는 거절 메일이라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모른다. 투고하고 나면 떨어졌는지 아닌지 모르니까 마냥 기다리게 되는데, 거절 메일이라도 받으면 그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줄고 다음엔 어떻게 투고해야겠다는 계획이 서게 되니까.
투고 메일을 정성 들여 쓰기 시작하니 출판사에서 일괄 발송하는 틀에 박힌 거절 메일 말고, 내 글을 진짜 읽은 출간 담당자가 쓴 메일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 받은 가장 감동적인? 거절 메일은 열린책들에서 받았다.
안녕하세요. 열린책들 인문팀입니다.
보내주신 원고 잘 읽어보았습니다. 주제 의식도 좋고, 진솔한 이야기로 여성도, 기혼자도 아님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가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계획한 방향과 맞지 않은 것이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원고 자체는 좋기 때문에 원고의 방향성과 맞는 회사를 찾아보시면 좀 더 좋은 제안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로서 좋은 책이 나오길 응원하겠습니다.
열린책들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열린책들 인문팀 드림
이제는 조금 알겠다. 적어도 거절 메일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투고 메일을 보내는 요령을.
바로, 투고 메일을 보내는데 품을 많이 들이는 것이다.
문예지나 신춘문예로 등단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작가가 되는 길은, 글 쓰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쏟아지는 투고 메일 중에서 내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출판사에 대해 조사하고, 출간된 책을 읽고, 출판사 책에 대한 피드백을 쓰고 난 다음에, 내 기획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소개하고, 나를 쓸만한 작가로 소개해야 하는 것이다.
검색엔진에 투고 요령에 대해 많이 찾아봤지만 결국엔 내가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관련 분야를 출간하는 출판사를 찾아 메일을 보내라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지만 내 원고를 읽게 만드는 법, 거절 메일이라도 받는 방법은 결국 200군데 넘는 출판사에 투고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기획안을 수정하지 않고 투고부터 한 내 미욱함 때문에 속이 쓰리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마음이 급해서 그랬을까, 빨리 내 글을 출판사에 보내보고 싶어서 얼마나 애가 달았으면 그랬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로 한다.
오늘도 투고 메일 하나를 공들여 보냈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섣부르게 낙심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절망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잘' 기다리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