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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ug 17. 2023

식물을 기르는 일

자취를 시작하면서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게발선인장이 두 번 피우는 것을 봤고 트리안의 덩굴이 길게 늘어져 수없이 잘라내곤 했다. 비좁은 자취방인데도 나름 어엿한 발코니가 있어서 식물들을 키울 수 있었다. 바람도 잘 통하지 않고 해도 잘 들지 않았는데도 포인세티아와 아이비와 홍콩야자 같은 것들이 잘도 자랐다. 2년여의 월세 계약이 끝나고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게 되었을 때 식물들을 친구들에게 분양했는데, 들여올 때와는 달리 잎이 무성해져 뿌듯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보면 난 살아 있는 것을 돌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결혼하고 나서는 내 손으로 식물을 들이지 않았는데, 살아있는 것이 우리 집에 와서 죽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축하 선물로 받은 커다란 고무나무와 석부작 분재, 해피트리 대품이 차례로 죽어나가면서 식물에 마음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죽은 식물이 든 화분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음울해졌고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내 무가치함에 자꾸 생각이 닿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해가 들지 않고 건조했던 환경, 물을 안 주고 굶기다가 흙 위로만 찔끔 주곤 했던  문제였지만 그때는 신경 쓴다고 쓰는데도 왜 식물이 죽는지 괴롭기만 했다. 그 후로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식물엔 자연히 관심이 끊어졌다.


지금도 가드닝을 하긴 한다. 어린이가 학교에서 봉선화 씨앗이나 산호수 화분 같은 것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집 발코니에는 어린이가 방과 후 교실에서 가져온 식물들이 늦여름의 따가운 해를 고 있다. 여러 종류의 다육이가 심긴 항아리, 금전수 중품, 봉선화 새싹, 물꽂이로 뿌리를 키워 어제 화분에 옮겨 심은 아이비, 잎을 다 뜯어먹어 줄기만 겨우 남은 바질 토분들이 창가에 졸졸이 줄을 서 초록빛을 피우고 있다. 식물이 살아 있는 풍경은 소득 없이 보낸 하루에도 심심한 위로를 주곤 해서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본다. 내가 볼 때 식물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녁엔 없었던 연둣빛 새 잎이 아침에 틔워 있는 것을 보면 마냥 얼음모드는 아니구나 하게 된다.


식물을 기르는 일에 있어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방향을 돌려가며 세워 주고, 바람이 통하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빛이 부족한 것 같으면 식물등을 켜준다. 그래도 식물은 때로 죽거나 마른 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화분에 옮겨진 것이 이미 척박한 환경에 억지로 뿌리내린 것이라 겨우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탓일 게다. 식물이 시들 때마다 내 무신경함에 자책하곤 했는데 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을 읽으며 그마저도 내 오만이었음을 깨닫는다. 식물의 생에 있어 내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 식물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스텝대로 밟아가있다는 것, 내가 아닌 것의 생을 좌지우지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나는 조력자로서 내 집에 들어온 식물의 생을 조금 도울 수 있을 뿐 생도 죽음도 온전히 식물의 것인 게다.


나는 살아있는 것에 마음이 쓰인다. 집을 깨끗하고 안온하게 잘 돌보는 사람들이 부럽긴 하지만 나는 부엌이나 거실의 말끔함에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은 못 된다. 시간이 있을 때 나는 발코니로 나가 금전수의 줄기를 만져보고 물을 언제 줘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비의 시든 잎을 따 준다. 다육이를 눌러보며 너무 물컹하진 않은지 걱정한다. 다음에 홈플러스에 갔을 땐 꼭 전지가위랑 삽을 사야지 다짐한다. 35도까지 올라가는 우리 집 발코니에서 식물들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후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담벼락에 붙은 덩굴손이가 우리 집 발코니의 식물보다 행복해 보여 처량해졌지만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조만간 작은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를 들일 예정이다. 칼라데아 종류에 마음이 뺏긴 지 오래인데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망설였었다. 올 겨울, 보름 정도 집을 비우고 오래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새 식물을 들일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매일 밤 이미지 검색으로 칼라데아 사진들을 훑어보고 엑스플랜트에 들어가 칼라데아 대품 가격을 알아보고 당근에 올라온 물건은 없는지 찾아보는 동안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의 동글동글한 잎, 반질반질한 질감, 시원스레 뻗은 잎맥에 마음이 홀려버렸다. 발코니 어느 곳에 칼라데아를 둘 지 이리저리 자리를 만들어 보게 된다.  


내 노력이 닿지 않는, 자기만의 생을 살 생물을 반려로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내 삶에 반짝하는 산 기쁨이 되기도 한다. 나도 내 삶에 작은 기쁨들을 쌓고 싶다. 생은 얼마나 대단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계속 살아가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기쁨을 곳곳에 밝혀두는 일. 내가 아닌 다른 생명에 마음을 쏟는 일. 살아 있어서 오늘도 식물을 돌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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