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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Sep 08. 2023

나의 첫 소파술 경험기

며칠째 팬티에 피가 비쳤다.   하지만 병원에 안 갔다. 산부인과에 가서 다리를 벌리고 질에 기구를 넣어 초음파를 보고 하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져서 그랬다. 그러는 사이 피 양은 조금씩 많아졌고 아랫배가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 이건 참아서 될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러고도 미적미적, 요가 갔다가 영어 스터디 갔다가 점심까지 거하게 때리고서야 겨우 용기를 내서 산부인과에 접수를 했다.


내가 제일 걱정한 건 의사가 별 일도 아닌데 왜 왔냐고 묻는 거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일 아닌 건 아니었고... 초음파상으로 자궁 내막이 지나치게 두꺼워져 있었다. 생리 끝난 지 얼마 안 된 보통 사람의 내막 두께는 4~5mm라면 나는 18mm. 의사는 당장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조직검사 방법은 자궁 내막 소파 수술을 하는 건데, 그러려면 수면마취를 해야 했다. 수면 마취를 한다는 건 저녁 먹고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금식을 해야 한다는 거였고... 나는 금세 데친 시금치처럼 피로해졌다. 대충 수술동의서에 사인하고 집에 와서 물을 한 드럼통 마다.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다음날 아침. 1번 환자로 갔다. 어차피 맞을 매 미리 맞고 말지.

수술 전 본 자궁 내막 두께는 19mm. 조금 더 두꺼워져 있었다. 뒤가 터진 치마를 입고 수술대에 눕자 간호사선생님께서 팔을 압박붕대로 팔걸이에 고정했다. 수술받다 몸부림치면 낙상 입을 수도 있어서라는데... 그때부터 몸이 덜덜 떨렸다. 수술실이 추워서였는지 긴장해서였는지 치마를 훌렁 걷어 하반신을 다 드러내서였는지, 암튼 떨림이 멎질 않았다. 수면마취만 간절히 기다렸다. 위 내시경 했을 때 약 들어갑니다~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모든 고통이 지나가고 나서 깬 유쾌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수면마취-프로포폴-는 나의 정신적 지지대다. 잠들었다 깨면 수술 다 끝나 있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으으.


드디어 초록 가운 입은 의사 선생님이 들어다. 곧 질에 길다란 큐렛 넣고 휘젓기 시작했는데 진짜 생살을 칼로 뜯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아악! 아파요! 수면마취 해주세요, 엉엉, 하니까 그때서야 생각난 듯 의사 선생님이 8mm 넣어주세요~했다. 그러면서 손은 쉬지 않고 자궁 쪽을 휘저었다. 제발!! 재워달라고!! 아무리 기다려도  잠이 안 들었다. 선생님, 아파요, 아파요, 하다가  암전.


수술 도구를 빼내는 날카로운 통증에 화들짝 놀라 깼다. 느낌으론 마취빨을 거의 못 받은 것 같았다. 간호사 선생님 마취가 잘 안 들은 것 같다며, 그래도 제일 아플 때 2~3분쯤은 잠이 들었었단다. 하... 하.. 하.


 몇 달 전 자궁내막증식증 때문에 똑같은 소파술을 받은 언니는 마취 안 하고 아예 맨 정신으로 그 수술을 받았단다. 몇 번 기절하고 깨어나고 했다는데 그 언니는 어떻게 견딘 건지. 새삼 눈물이 났다. 사람은 왜 자기가 겪어야만 아는지.


내가 아프든 말든 수술은 잘 끝났고 내막은 얇아져있었다.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쯤 있다가 나온다면서 최악의 결과는 내막암일 수도 있단다. 의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말해주는 거라지만 대번에 입맛이 사라졌고... 그건 아주 드문 일이라 나조차도 놀랐다.


며칠을 거의 뭘 안 먹고 지냈다. 밤에 눈을 감아도 잠이 잘 안 왔다. 수술 여파인지 계속 조금씩 하혈을 했다.


결론은, 나는 내막암도 아니고 내막증식증도 아니었다. 다만 자궁에 혹이 있었단다. 소파술 하면서 혹은 제거했고, 혹 때문에 피+통증이 있었던 거란다. 그때서야 훅, 졸음이 몰려왔다. 그날 집에 와서 3시간을 내리 잤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또 팬티에 피가 비친다. 처음엔 몇 방울 수준이다가 숫제 생리 이틀째처럼 콸콸이다. 이제는 짜증부터 다. 사람들이 대도시 병원에 자꾸 가보라는데 애 둘을 얻다 맡기고 가나. 피가 며칠이 지나도 안 멎어서 또 병원 가서 또 그 의자... 에 앉아 다리를 벌렸다.


 초음파상으로는 자궁 내막도 얇고 아무 문제가 없단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피가 계속 나오는 건지. 결국 야즈정-호르몬제-을 처방받았다. 몇 알 안 들었는데 드럽게 비싸다. 호르몬제는 정말 먹기 싫다. 호르몬제를 먹으면 이유 없이 우울감이 든다. 바람 솔솔 불고 햇빛이 반짝이는 거리를 걸어도 우울감이 걷어지지 않는다. 오늘 어떻게든 우울을 떨치려고 차를 몰고 나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단호박 샐러드도 사고, 도서관 가서 만화책도 잔뜩 빌렸는데 별 효과가 없다. 왜 살지, 진짜 왜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만 든다.


그 와중에 브런치에서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며 뭐라도 쓰라고 종용하는 알림을 보내서... 그래, 이거라도 써 놓자 싶어서 주절주절 생각나는 대로 써 봤다. 막상 며칠 지나면 내가 왜 그랬지?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그랬다.


우울아, 멀리 가. 피야, 너도 가. 다 제발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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