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식물에 마음을 쓴다. 상처받을 일만 많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있는 마음 다 내놓아도 상처 주지 않는 대상이 식물인 것 같아서다. 바람이 잘 흐르도록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고 식물 앞에 앉아 오래 시간을 보낸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엔 바질, 다육들, 아이비, 금전수, 산호수 화분이 줄지어 해를 맞고 있다.
너무 잎을 많이 따먹어버렸는지 몇 달 비실거리던 바질은 가을을 맞아 드디어 새 잎을 내기 시작했다. 계절 변화에 제일 민감한 건 어린이와 식물이다. 환절기가 되자 아이들 코에 맺히는 땀이 줄기 시작했고 식물은 연둣빛 여린 잎을 자꾸 내민다. 특히 바질은 아침에 봤던 키와 저녁에 보는 키가 다를 정도다.
몇 달이나 미뤘던 분갈이도 드디어 했다. 외출했다가 늦여름 햇빛이 따가워 땀이 잔뜩 났었는데, 땀 난 김에 분갈이까지 해치우자 싶어 거실 한복판에 신문지를 넓게 깔았다. 분갈이가 제일 시급한 건 금전수였는데 이미 뿌리가 미어지게 들어차서 물구멍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화분이 없다는 이유로 분갈이를 미뤘다. 그러다 며칠 전 잎이 좀 풀이 죽는 걸 보고서야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토분을 주문했다. 손으로 직접 빚은 멋진 테라코타 화분이었다. 배송받은 토분은 화면에서 봤던 것보다 더 예뻤다. 흰색이 회오리치는 밝은 주황색 화분이라 눈이 다 환해졌다.
금전수는 예상대로 뿌리가 화분에 꽉 들어차 있었다. 아무리 삽으로 벽을 긁어내고 흙을 덜어내도 빠져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망치로 화분을 깼다. 마음에 드는 미색 화분이었는데, 게으름이 죄다. 뿌리가 제멋대로 엉켜 화분 윗부분까지 튀어나오고 있었는데 마사토를 두껍게 덮어놓아 몰랐다. 불쌍한 금전수.
마구 얽힌 뿌리를 빗어 가지런히 하고 너무 긴 건 잘라내 버렸다. 말라버린 잎도 쳐냈다. 키만 껑충 커버린 줄기는 생장점을 남기고 잘라내 물꽂이해뒀다. 뿌리가 자라나면 예쁜 분에 옮겨 심어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새 화분에 깔망을 깔아 물구멍을 가리고, 세척한 마사토를 넉넉히 깔았다. 구근 같은 금전수 뿌리가 우람했다. 큰 줄기들을 중앙에 두고 보슬보슬한 흙을 살살 채웠다. 갓 채운 흙은 가볍고 보드라워서 말랑말랑한 떡을 만지는 것 같았다. 화분 아귀까지 조심스럽게 흙을 채우고 주먹으로 화분 벽을 가볍게 탕탕 쳐 흙들이 자리 잡게 했다.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물만 듬뿍 주면 자연스럽게 흙이 다져진다.
금전수 화분을 욕조로 안고 가 흙이 흠뻑 젖도록 물을 주었다. 물을 먹어 진주홍빛으로 변한 화분과, 송골송골 물이 맺혀 반짝거리는 금전수 잎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간 몸도 아프고 마음먹은 대로 글도 안 써져서 자꾸 속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1시간 정도 땀 뻘뻘 흘리며 분갈이하는데 온 마음을 쏟고 나니 우울감이 싹 가셨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진짜 가을이었다. 높고 파랗고 맑고. 마음이 어두울 땐 하늘 올려다볼 엄두도 안 났었다.
바람이 제일 잘 지나는 곳에 금전수 화분을 놨다. 물꽂이해놨던 산호수 몇 줄기도 작은 토분에 옮겨 심었다. 며칠은 분갈이 몸살을 앓겠지만 둘 다 뿌리가 튼튼하고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니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거다.
요즘 새로운 식물을 들이려고 계속 알아보는 중이다. 마음을 홀랑 뺏길 만큼 반들반들하고 쫙 뻗은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를 파는 화원을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고 하루에 몇 번씩 들락날락한다. 오르비폴리아는 그리 비싼 식물은 아니어서 마음만 먹으면 들일 수 있는데 왠지 마음이 먹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예쁜 애가 우리 집에 와서 이 위용을 잃을까 봐, 집사 노릇을 제대로 못해서 죽일까 봐 무섭다.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가까이하기 힘든 거랄까.
그러고 보니 식물을 키우면서 비건의 삶에 더 가까워졌다. 식물은 흙과 물과 바람만 있으면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자라나 열매까지 맺는다.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쉴 자리를 내주면서 홍시까지 떨어뜨리는 집 앞의 감나무를 보면서 그 삶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 모습을 닮고 싶어 육식을 식단에서 많이 덜어냈다. 절대 못 끊을 것 같았던 우유도, 생선도 덜어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되도록이면 채식에 가깝게 식사한다. 혼자 있을 땐 완전 채식으로 식탁을 꾸린다. 요새 불 쓰는 것도 싫어서 간소하게 식사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간장에 비빈 밥에 김과 오이를 곁들이는 정도. 건강하지 않은 식단일지는 몰라도 몸과 마음만큼은 가볍고 좋다.
식물이 좋다. 부러 남을 신경 쓰지 않고도 스스로 잘 사는 식물이 좋다. 먹고 싶은 것을 양껏 먹어도 더 선명하고 신선해지기만 하는 식물이 좋다.
다음에 식물에 관한 글을 쓸 때는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가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그때까지 과연 지나치게 사랑하는 걸 곁에 둘 용기가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