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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Oct 08. 2023

나는 당신이 내 아빠면 좋겠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집 앞의 오래된 교회로,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지만 아직까지 신도 수 200명 정도인 조그만 곳이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에 성탄 공연 보러 몇 번 와 본 적 있었는데 결혼하고 귀향하면서 제대로 다니게 되었다.


교회가 작다 보니 봉사할 일이 종종 있는데, 오늘은 예배 안내 봉사를 맡아서 좀 일찍 교회에 갔다. 안내 봉사는 교회 소식지나 주보 나눠주고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그런 거다.

교회에 갔더니 사모님이랑 목사님이 웃으며 반겨주신다. 봉사하느라 일찍 왔냐고, 기특하다고 어깨도 두드려 주시고.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교회에 있기만 하면 맨날 고생했다고 하신다. 


우리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존경받을만한 어른의 전형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면서도 친절과 따듯함까지 갖춘 그런 어른.


맡은 일을 해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친절까지 베풀 수 있는 건 마음에 여유 있는 사람뿐이다. 목사님 부부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분들이다. 다른 사람을 늘 살피고 계신다. 소외되는 사람, 마음이 다친 사람은 없는지 늘 세세히 보고 계신다. 직업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고, 마음이 단단한 어른이다. 어딘가 휩쓸리지 않고 바르게 서 있는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사회인으로서 상식을 갖춘 분들이고 무엇보다 따듯하다.

사모님은 내가 교회처음 오자마자 이름을 기억해 주다. 두 번째 만남부터는 꼭 이름을 불러 주시고, 잘 왔다고, 너무 잘 한다고 해 주신다.

나는 어른의 이런 다정함이 늘 그립다. 어른의 살핌과 다정함을 받으면 가슴 한 켠이 뻐근해지면서 눈물부터 난다.

애를 둘이나 낳고 사회적으로 어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칭찬받고 싶고 애정 어린 눈길을 받고 싶다. 요가 선생님한테도 그렇고 목사님, 사모님한테도 그렇고 사회에서 만난 권위자나 연장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격려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못난 마음이라는 거 아는데 그냥 그렇다 나란 사람은.


목사님은, 뵐 때마다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혼자 몰래 생각한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다정한 남자 어른의 전형이다. 잘 웃으시고(그야말로 깔깔 웃으신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배 잡고 웃어주신다. 목사님 특유의 엄격함이나 무서움이 없다), 우리 애들을 볼 때마다 일부러 멈춰 서서 꼭 기도해 주시고, 너무너무 다정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신다. 목사님께도 두 딸이 있는데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매일 통화를 나눈다고 들었다.


언젠가 목사님 앞에서 '성경은 너무너무 차별적이고 약자 혐오가 많다, 폭력적이다, 이 걸 어떻게 의심 없이 받아들이냐'며 엉엉 운 적이 있는데 그때 목사님은 나를 단 한 마디도 탓하지 않으셨다. 맞다고, 그 시대가 그랬다고, 얼마나 슬픈 일이냐고 말해주셨다.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며 만난 목사님들에게서 느껴지던 벽 같은 것이 없었다. 내 깊은 슬픔, 소속되지 못하는 아픔을 읽어주셨다.


목사님이 나의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혼자 울컥 눈물이 솟는다. 목사님이 내 아빠였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가슴이 조여 온다.

자식을 아끼고 소중히 대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 당연함을 당연하게 수행해 주는 그런 상식적인 어른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이 내 아빠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생각을 이제는 목사님을 볼 때마다 하곤 한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결핍이나 결락 같은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안고 살아갈 만큼은 어른이 되었다.

내가 목사님이나 사모님같은 어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면 된다. 자식에게 다정한 어른, 어린이에게 친절하고 따듯한 어른이 되면 된다. 언젠가 내가 그런 단단하고 사랑 많은 어른이 된다면 내 어린 시절의 결여도 조금쯤 치유받을 수 있겠지.

 

어른다운 어른을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행운이고 좋은 일이란 걸 안다.


그래도 그냥,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 것이 아니었던 다정한 삶에 대한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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