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햇빛이 따끈따끈했다. 바람도 솔솔 불어 걷기 좋은 날씨다. 벼르고 있던 화원 나들이에 나섰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큰 화원은 없다. 오늘 찾아간 곳도 규모가 큰 곳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식물들, 독특한 식물들을 자주 들여놓는 곳이다.
오늘 목표는 싱싱한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데려오기. 잎 색이 짙고 탄탄한 애가 있길 기대하며 갔다.
볕이 좋으니 식물이 심긴 포트들이 밖에 나와 햇빛을 맞고 있었다. 다육이 종류만 수십 가지다. 전부터 다육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광량을 채워 줄 자신이 없어 망설였었다. 그런데 한 애한테 순식간에 마음을 뺏겼다.
포트 한중간에 장밋빛을 띤 잎 넓은 다육이가 어찌나 이쁜지. 사진엔 미모가 반도 안 담겼다. 살짝 말린 잎 모양새도, 레이스같은 장밋빛 끄트머리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집어 들었다(나중에 식물 이름 알려주는 어플 모야모에 물어보니 '캉캉'이었다. 이름조차 예쁘다). 그때부터 엉뚱한 식물 쇼핑이 시작되었다. 정작 사려고 벼르던 오르비폴리아엔 손도 안 댔다. 색이 흐리고 잎이 시들해서 눈에 안 찼다. 그런데 생뚱맞게 오르비폴리아 옆에 있던 오나타에 눈이 갔다. 붓으로 그린 듯한 잎무늬가 너무 고운 거다.
색이 묽고 뭔가 힘이 없는 오르비폴리아
올리브빛 잎과 여린 분홍 선 대비가 아름다웠던 오나타
칼라데아 시리즈를 좋아하긴 했지만 오나타엔 별로 마음 가지 않았는데 오나타는 그야말로 실물 깡패였다...! 짙은 올리브빛 잎이 어찌나 산뜻한지 마음이 아주 홀딱 뺏겼다. 그래도 키우기가 까다롭다고 들어서 화원을 몇 바퀴 돌며 고민했다. 이렇게 예쁜 애가 우리 집 와서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그런데 화원 전체를 돌아봐도 오나타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물론 신기하고 예쁜 포트는 많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2개 이상은 안 들이겠다고 다짐하고 갔으므로 제일 마음에 드는 애를 골라야 했다. 결국 여러 포트 중에 가장 싱싱해 보이는 오나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화원에서 판매하는 화분이 비싼 편이라(하긴 빈티지 화분 중에 싼 게 어디 있을까만은) 집에서 분갈이를 할까 싶었는데, 전부터 전문가가 하는 분갈이를 보고 배우고 싶었으므로 눈 딱 감고 토분 하나를 골랐다. 사장님이 배양토를 쌓아놓은 큰 상자 앞에 서시더니 다육이는 마사토를 많이 섞어 다독다독 덮어주셨다. 마사를 넣고 식물 뿌리를 펴서 넣고 아귀까지 흙을 채우기까지 1분도 안 걸렸다. 손이 번개 같았다. 분갈이한 화분을 건네주시면서 절대로 손으로 흙 눌러서 다지지 말라고, 물 주면서 자연스럽게 다져지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다육이는 잎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물 주지 말라고도 하셨다. 오나타는 실내에서 따듯하게 키우라고 하시면서, 다음에 또 놀러 와서 구경하고 가라고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종이봉투에 담긴 화분 두 개를 안고 나오면서혼자 웃었다. 마음에 뒀던 애는 안 들이고 엉뚱하고 낯선 애들만 데리고 오다니. 식물 실물을 영접하는 게 이렇게 무섭다.
집에 와서 해가 가장 잘 드는 상석에 애들을 두고 식물등도 켜주고 서큘레이터도 돌렸다. 빛을 받으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한층 더 예쁘다. 이렇게 이쁜 애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돤다.
오늘 배우자가 야근이라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았는데 식물들 앞에 퍼질러 앉아 잎도 만져보고 먼지도 털어주고 한참 시간을 보냈다. 멍하니 계속 바라보고 있고만 싶었다. 이른바 식물멍.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진다.
화원에 또 가고 싶다. 커다란 화훼단지에도 가보고 싶다. 식물집사의 세계는 또 얼마나 넓고 깊은지. 식물마다 다른 역사와 다른 기쁨이 있다. 다음번엔 무늬 크로톤과 프릴 아이비를 반려로 들이고 싶다.
노랑 반점이 멋졌던 반딧불크로톤
이 글 다 쓰고 나면 또 오나타를 보러 갈 거다. 애들도 재웠으니 한참 앉아있을 수 있겠지. 아, 식물 키우는 것, 정말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