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Oct 11. 2023

캉캉과 오나타와 낯선 만남들

며칠째 햇빛이 따끈따끈했다. 바람도 솔솔 불어 걷기 좋은 날씨다. 벼르고 있던 화원 나들이에 나섰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큰 화원은 없다. 오늘 찾아간 곳도 규모가 큰 곳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식물들, 독특한 식물들을 자주 들여놓는 곳이다.

오늘 목표는 싱싱한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데려오기. 잎 색이 짙고 탄탄한 애가 있길 기대하며 갔다.


볕이 좋으니 식물이 심긴 포트들이 밖에 나와 햇빛을 맞고 있었다. 다육이 종류만 수십 가지다. 전부터 다육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광량을 채워 줄 자신이 없어 망설였었다. 그런데 한 애한테 순식간에 마음 뺏겼다.

포트 한중간에 장밋빛을 띤 잎 넓은 다육이가 어찌나 이쁜지. 사진엔 미모가 반도 안 담겼다. 살짝 말린 잎 모양새도, 레이스같은 장밋빛 끄트머리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 집어 들었다(나중에 식물 이름 알려주는 어플 모야모에 물어보니 '캉캉'이었다. 이름조차 예쁘다). 그때부터 엉뚱한 식물 쇼핑이 시작되었다. 정작 사려고 벼르던 오르비폴리아엔 손도 안 댔다. 색이 흐리고 잎이 시들해서 눈에 안 찼다. 그런데 생뚱맞게 오르비폴리아 옆에 있던 오나타 눈이 갔다. 붓으로 그린 듯한 잎무늬너무 고운 거다.

색이 묽고 뭔가 힘이 없는 오르비폴리아
올리브빛 잎과 여린 분홍 선 대비가 아름다웠던 오나타

칼라데아 시리즈를 좋아하긴 했지만 오나타엔 별로 마음 가지 않았는데 오나타는 그야말로 실물 깡패였다...! 짙은 올리브빛 잎이 어찌나 산뜻한지 마음이 아주 홀딱 뺏겼다. 그래도 키우기가 까다롭다고 들어서 화원을 몇 바퀴 돌며 고민했다. 이렇게 예쁜 애가 우리 집 와서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그런데 화원 전체를 돌아봐도 오나타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물론 신기하고 예쁜 포트는 많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2개 이상은 안 들이겠다고 다짐하고 갔으므로 제일 마음에 드는 애를 골라야 했다. 결국 여러 포트 중에 가장 싱싱해 보이는 오나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화원에서 판매하는 화분이 비싼 편이라(하긴 빈티지 화분 중에 싼 게 어디 있을까만은) 집에서 분갈이를 할까 싶었는데, 전부터 전문가가 하는 분갈이를 보고 배우고 싶었으므로 눈 딱 감고 토분 하나를 골랐다. 사장님이 배양토를 쌓아놓은 큰 상자 앞에 서시더니 다육이는 마사토를 많이 섞어 다독다독 덮어주셨다. 마사를 넣고 식물 뿌리를 펴서 넣고 아귀까지 흙을 채우기까지 1분도 안 걸렸다. 손이 번개 같았다. 분갈이한 화분을 건네주시면서 절대로 손으로 흙 눌러서 다지지 말라고, 물 주면서 자연스럽게 다져지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다육이는 잎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물 주지 말라고도 하셨다. 오나타는 실내에서 따듯하게 키우라고 하시면서, 다음에 또 놀러 와서 구경하고 가라고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종이봉투에 담긴 화분 두 개를 안고 면서 혼자 었다. 마음에 뒀던 애는 안 들이고 엉뚱하고 낯선 애들만 데리고 오다니. 식물 실물을 영접하는 게 이렇게 무섭다.


 집에 와서 해가 가장 잘 드는 상석에 애들을 두고 식물등도 켜주고 서큘레이터도 돌렸다. 빛을 받으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한층 더 예쁘다. 이렇게 이쁜 애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돤다.

오늘 배우자가 야근이라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았는데 식물들 앞에 퍼질러 앉아 잎도 만져보고 먼지도 털어주고 한참 시간을 보냈다. 멍하니 계속 바라보고 있고만 싶었다. 이른바 식물멍.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진다.


화원에 또 가고 싶다. 커다란 화훼단지에도 가보고 싶다. 식물집사의 세계는 또 얼마나 넓고 깊은지. 식물마다 다른 역사와 다른 기쁨이 있다. 다음번엔 무늬 크로톤과 프릴 아이비를 반려로 들이고 싶다.

노랑 반점이 멋졌던 반딧불크로톤

이 글 다 쓰고 나면 또 오나타 보러 갈 거다. 애들도 재웠으니 한참 앉아있을 수 있겠지. 아, 식물 키우는 것, 정말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