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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20. 2022

헬프, 도와줘요 여기 비상.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2015년. 첫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피부가 벌건 채로 태어났다. 며칠이 지나자 머리에 흰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고름같은 것들이 두피를 덕지덕지 뒤덮었고, 기저귀가 닿은 부분마다 좁쌀같은 빨간 두드러기가 돋았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상태는 더 심해졌다. 특히 두피는 머리카락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태지가 뒤덮었다. 아기가 누워 있던 자리마다 비늘이 떨어진 것처럼 흰 가루가 날아다녔다. 건조해서 그런가해서 조금이라도 피부가 말라있다 싶으면 네 가지 종류의 크림을 돌아가며 아기한테 발랐다. 그런데도 젖만 먹고 나면 가슴에 닿은 아기 볼이 벌겋게 헐었다. 빵이나 우유를 먹고 수유하면 아기 피부 상태가 더 심해졌다. 태어난지 삼개월. 백일도 안 된 아기가 아토피 판정을 받았다. 피검사를 해 보니 먹이면 안되는 음식 리스트가 A4 두장을 메웠다. 우유나 계란,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은 일절 금지였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을 먹고 수유를 하면 아기 입 주변이 대번에 벌개졌다. 가려움때문인지 아기는 하루 종일 칭얼거렸다. 밤엔 호르몬 탓인지 가려움이 더 도지는 것 같았다. 겨우 재웠다 싶으면 10분만에 일어나 몸을 긁으려하며 울었다.


거의 매일 밤을,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가 안고 얼렀다가 크림을 발라줬다가 하며 함께 깨어 있었다. 나는 그 때 고등학교 근무중이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든 아기를 눕히면 6시반 알람이 울렸다. 유축기로 젖을 짜두고 친정 엄마에게 아기를 맡긴 뒤 밤을 샌 채 출근했다. 잘 못 먹고 잘 못 자니 항상 얼굴과 옷차림이 구깃구깃했다. 말라빠진 걸레 쥐어짠 것 같이 하고 다녔다.


그 때 같은 교무실을 쓰던 선생님 중에 비건이었던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가르치는 학생이 겹쳐서 아이들 이야기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끈끈하게 한 것은 급식을 먹을 수 없는 데에 대한 동지애였다.

선생님은 젓갈 한 방울이 들어간 음식도 드시지 않았다. 매일 도시락을 싸 오셨다. 나는 나대로 계란과 견과류를 먹지 못하니 김을 챙겨다니면서 그야말로 급식‘밥’만 먹었다. 우리는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의 급식 메뉴 선택권이 없음에 대해 분개하고, 비건식에 대한 일말의 고민이 없는 영양사님에게 분통 터져하며 점심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다.

회식도 종종 했는데, 메뉴는 불고기 전골이나 잉어찜 같은 거였다. 선생님과 나는 친목계 비용으로 매달 만 원씩 냈지만 한 번도 회식 메뉴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회식 장소에 가면 선생님은 맨밥에 깻잎만 싸 드셨다. 근무하는 1년동안 밥 때문에 애면글면했다.


고생스럽던 수유를 중단하고도 이유식이 문제였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빼면 애가 먹을 게 없었다. 한두 가지 야채만 넣고 끓인 이유식을 아기는 잘 먹으려들지 않았다. 그 때부터 우리집엔 첫째 전용 식단표가 생겼다. 아기가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를 가지고 조리법을 달리 해서 여러가지 맛을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기가 잘 먹으면 식단표에 적어 넣었다. 8살이 된 지금까지도 첫째만을 위한 밥상을 따로 차린다. 비건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채식 위주의 식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건식, 비건빵에 관심을 갖던 중 검색 알고리즘에 <나의 비거니즘 만화>가 걸렸다. 만화라면 뭐든지 읽는지라 비건에 관련된 내용이겠지, 하고 주문해 읽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을 맨 뒷장이 넘기기까지 손에서 놓질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잘리는 병아리들, 도축될 때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가보는 돼지들, 강제로 임신시켜 젖을 짜내는 젖소의 존재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밥상에 오르는 육고기가 어떤 식으로 가공되는지 전혀 몰랐다. 모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세상이 이 모든 비인도적인 도축과정을 꽁꽁 숨겨둔 것 같았다. 아이 때문에 관심 갖기 시작했던 비거니즘을 이제는 내 삶으로 끌어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장 볼 때 한두 개쯤 끼워넣곤 했던 소시지나 만두를 더는 사지 않는 걸로 조금씩 삶의 방향성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을 온전히 비건으로 살지는 못한다. 특히 식단이 그렇다. 샴푸나 선크림 같은 생필품을 고르는 일은 비건 제품을 검색해서 사면 되니까 쉬웠다. 하지만 먹는 일. 특히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일에서 혼자 비건식을 먹는 일은 참 어려웠다. 배우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불판에 구운 삼겹살, 기름에 구운 만두, 치킨 같은 거다배우자가 그런 음식을 먹자고 할 때마다 나는 환경 문제를 이유로 들어 거절하곤 했는데, 배우자는 그런 대꾸를 어이없어했다. 지금까지도 식단에 관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늘도 영어스터디를 마치고 스터디 멤버들이 가자는 대로 갈비탕 집에 갔다. 그냥 집에 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다 같이 점심먹으러 가는 분위기를 깨기 싫었다. 집엔 텅 빈 밥솥밖에 없는데 새로 밥 짓기도 다 귀찮고 싫어서 그냥 따라갔다. 그리고 갈비탕에 든 고기를 남김없이 먹었다. 마음 한 켠에 이건 사실 송아지가 망치에 맞고 죽어가면서 내 놓은 거야,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음식 남기는 게 더 나쁜거야, 생각하면서.

어제는 애들이 하도 졸라서 치킨을 저녁으로 시켜 먹었다.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면서도 치킨 가격이 비싼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시켰다.

안다. 닭은 30년을 넘게 살 수 있는 거. 그런데 내가 먹는 치킨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된 닭을 죽여서 만든 거라는 거. 다 알면서, 그러면서 그냥 징징거리는 애기를 말로 설득할 에너지가 없어서, 그냥 다리 하나를 쭉 뜯어 애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인간은 자신이 지향하는 바와 실제 살아가는 방식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낀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읽었다. 별 고민없이 치킨집 전화번호를 누를 때, 내 삶이 다 가식이라 느껴진다.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늘 바르게 사는 것처럼 ‘종차별에 반대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집 냉장고엔 치킨집 쿠폰 여러 장이 붙어 있다.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입는지에 대해 매 순간 생각하지 않고 결국엔 나 편한대로 살아간다.


이런 이상과 일상의 차이에서 마음이 쓰러지려고 할 때, 그래서 이놈의 유죄인간, 나 같은 건 죽는 게 환경에 도움이야! 하는 생각이 나를 책잡을 때. 나는 마음의 변호사를 부른다. 헬프. 도와줘요. 여기 비상.


내 변호사라면 나를 위해 이렇게 말해줄거라고 구체적으로 나를 변호해본다.


“당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일상에서의 작은 노력이 결국 삶의 끝에서는 큰 차이를 불러올 거예요.

당신은 매일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요.

동물 복지 마크가 새겨진 계란이나 닭고기를 사러 일부러 멀리 있는 작은 가게까지 가지요.

하루에 한 끼는 비건식을 하려 하지요.

가죽 제품을 사지 않지요.

보호소에서 버림 받은 강아지를 후원하고 있지요.

혼자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지요.

일회용 빨대나 플라스틱 숟가락을 쓰지 않지요.

일부러 감옥에 기어 들어가지 마세요.”


그래.

살아 있는 일이 쓰레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라지만, 최소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는 되게 하자. 오늘 고기를 먹었으면 내일 메뉴는 상추만 썩썩 썰어 넣고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어서 아이들이랑 비빔밥 한 양푼 해먹어야지.


조금씩, 내 삶에 이런 부분들이 모여 결국엔 ‘나’라는 작은 틀을 벗어나 타인으로, 타종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더는 매일을 내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고 싶지 않다.

아기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기위해서 오늘의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생생한 실파를 썰어 넣은 양념장을 만든다.

아기들이 좋아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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