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책을 읽는 것만도 힘에 부쳐 다시 되새김질하는 것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주말이 다 지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려보고자 글을 씁니다.
그래도 독서모임 다녀오면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마음에 든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평소에 제 과거 선택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훨씬 많았는데, 독서모임에 다녀오면 제 자신을 좀 더 관대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게 참 감사하고 행복해요.
아무튼 '좀 더 열심히 살기' 와 '읽은 것에 대한 삶의 적용'의 일환으로, 이 시간에 핸드폰만지며 안 놀고 노트북 켜서 이렇게 글쓰기로 마음먹은 것 자체가 스스로 너무나 대견하고 뿌듯해서 제 자신이 참 마음에 드네요.
이제는 책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일단 밀은 이상주의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대 높은 수준의 지식인이 많이 없었던 가운데 이런 글을 쓰기까지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대 사람들의 무지한 삶의 방식에 대한 답답함이 얼마나 가슴을 찔렀을지 생각해 봅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나누고 전하고 싶은데 대화나 설득으로는 해결을 볼 수 없을 때 하나의 탈출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로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라고 거듭 반복되는 밀의 문장을 보며 ‘얼마나 많이 이 사람의 자유가 침해받았었기에 이렇게 글을 써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가르치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르칠 필요를 강하게 느꼈기에 자유론을 쓴 것이겠지요.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이다’는 문장을 읽으며 저는 얼마나 제 몸이나 정신에 대하여 제 스스로의 주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습이나 주변 사람의 말에 이끌려서,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서, 텔레비전 같은 매체의 영향 등으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지 않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인지 점검해보지 않고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를 나오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둘째를 나름 급하게? 가진 것도 터울이 더 지면 안된다, 외동은 혼자라서 외롭다 같은 세상의 인식에 휘둘렸던 결과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둘째에게 미안하고 저 스스로도 괴롭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수 있다는 자유론의 원리가 아직 저에게 적용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또 제 안에 끊임없이 저 자신을, 또 남을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의식적으로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설령 다른 사람의 눈에 어리석거나 잘못되거나 또는 틀린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런 이유를 내세워 간섭해서는 안된다, 고 하는데 참 어렵네요. 특히 제 자식에게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제 동생에게 ‘그렇게 하면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튀지 않고 살아갈 것’을 끊임없이 강요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재작년에 교단에 섰을 때 남학생들에게 ‘넌 뭐 그런 말을 하냐. 남자답게 좀 굴어.’같은 말이나, 여학생들에게 ‘여자가 왜 이렇게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몸가짐 똑바로 해!’같은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첫째 아이에게도 ‘넌 여자애가 목소리가 왜 이러니, 여자애가 왜이렇게 날뛰니’같은 말도 했던 적이 있었고요. 요즘은 정말 그런 말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려 노력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첫째를 ‘공주’라고 부르는 일도 안하려고 애쓰고, 첫째의 성향에 대해 고민하던 일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하는 문장이 제 가슴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삶은, 제 남편의 삶은, 혹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의 삶은 제 삶이 아닙니다.
제 자신의 삶을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 이 책을 읽으며 제 자신을 돌아본 것.
저는 비판에 참 취약한 사람입니다. 누가 제 결점이나 실수를 지적해 주었을 때 저는 그것을 제 개인의 인격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그런 격렬한 분노를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사소하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당신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고 남편이 한 마디 말했을 때 제가 ‘당신은 나를 모른다, 나는 태권도도 했고 마라톤도 했고 등산도 하고 어릴때부터 헬스도 했으며...... 아무튼 아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당신이 왜 나를 감히 판단하냐!’하고 갑자기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내며 남편과 다투었던 일입니다. 밀은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기보다 그것을 자청해 나서고,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수많은 비판을 봉쇄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판단에 더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맏이로 자라 그런지, 아니면 어릴 때 왕따를 거듭 당한 기억 때문에 그런지 비판에 취약하고 비난받는 것을 과도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내 의견과 달라도 대충 남의 의견에 동조하는 말을 해 놓고는 뒤에서 후회하곤 합니다. 제 의견을 지키고 제 소신을 지켰어야 하는 자리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뒤에서 후회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누가 표출했을 때 수용이 잘 안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도 성장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수정될 거라 믿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밀이 써 두었네요!
그리고 또한 밀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썼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불평이 참 많았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에 자주 깨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 몸이 무거운데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 밤에 잠 한 번 깊이 못 자는 것, 자주 악몽을 꾸는 것등에 대해 자주 불평을 얘기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이 가치 있는 삶의 한 부분이었을까 하고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부끄러워집니다.
밀은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그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쓰레기를 치울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책 한 줄을 읽을 때도 ‘어떤 방식으로’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제 자신이 참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오늘 남편이 포항으로 출장을 가서 이번 주 내내 독박육아를 해야 하고 혼자서 아이들의 식사 및 목욕, 청소와 설거지와 빨래 등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웠었습니다. 혼자서 오늘 오후 첫째의 갖은 방해와 ‘왜’ 공격(하루에 왜 폭격을 정말 백 번 넘게 받는 것 같아요)에 화내지 않고 즐겁게 대화하고 책도 많이 읽어 주었습니다. 놀랍도록, 슬프거나 원망스럽거나 하지 않고 시간들을 보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깨끗하게 씻긴 아가를 제시간에 눕혀 재우고 깨끗이 치운 거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감사하고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별 거 아닌데도 일상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에 오늘은 더 가치 있는 삶에 한걸음 다가가려 애쓴 날이 아닌가 싶어 그냥 제 자신을 막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밀의 글이, 문장이 시대를 넘어 저에게 다가온 부분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며 이 글을 갈무리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