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분실물 투성이었다. 뭔지 몰라도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내 운명에 대한 자각. 자각도 없이 때로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찾고, 때 모르는 열정을 불태우며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 애썼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것을 안다. 내가 별나게 불행하지도, 슬프지도 않다는 것도 안다
삶에 쫓겨 많은 거짓말을 하며 어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시침 뚝 떼고 '어른'으로서만 살아가는 삶에서 설이가 나에게 콜론을 찍어주며 되짚어 보라 한다. 어린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고. 대부분의 어린이는 어른이 주는 폭압 속에서 힘든 시간을 통과하며 자라난다고.
이 책을 읽는 중 스스로 던진 질문에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애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자식에겐 얼마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인간은 너무나도 불완전하며, 부모가 자식으로 인해 철이 든다면, 즉 부모의 철없고 악한 부분들이 자식을 낳고 키움으로써 개선된다면, 자식은 무슨 죄가 있냐고. 자식이 한 개인의 성장 발판이 될 수 있냐고. 인간이 인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거냐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간은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며, 자식에게 내가 다가 아니며, 모든 것이 좋거나 모든 것이 나쁠 수 없으며, 우리가 자식에게 빚지면서 나 자신을 바르게 세워 가듯이 우리의 자식들 또한 부모와 그다음 세대들에게 빚지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낳든 안 낳든,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자들과 어린 자들에게 빚지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동물들, 어린 자들, 노인들... 우리보다 약한 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를 깨닫게 하며, 나 자신 또한 그들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나 혼자 잘나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한다.
설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게 태어나 많은 사람을 깨닫게 하고 너 스스로도 깨달으며 사는 모든 존재의 통칭.
나도 설이와 같았던 어린 시절을 지났던 사람으로서, 또 지금은 설이와 같은 어린이를 돌보는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