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도서관에서 오래된 [마틸다] 책을 발견했는데, 초등학생에게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를 억지로 먹어치우게 했던 무시무시한 교장선생님이 나왔던 영화 장면이 떠올라 다시 읽어보려고 꺼내 들었다.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는 어른이 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데, [마틸다]는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책날개의 소개를 보니 이런 설명이 실려 있다.
"1988년 첫 출간, 로알드 달의 마지막 장편동화"
고작 다섯 살에 찰스 디킨스와 헤밍웨이, 러디어드 키플링을 섭렵한 독서광이자 수학과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며, 그것도 모자라 초능력까지 겸비한 아이. 천재 소녀 마틸다가 지구에서 추방해야 할 정도로 나쁜 어른들과의 대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다.
마틸다는 아동학대 가정에서 자란다. 아빠는 도난 차량을 사들여 미터기를 조작해 파는 사기꾼이다. 엄마는 빙고 게임에 빠져 늘 집에 없다. 오빠가 하나 있지만 오빠와 마틸다가 대화를 나누거나 남매로서 우애를 쌓는 내용은 책 전체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마틸다의 엄마 아빠는 마틸다에게 자주 폭언을 퍼붓고, 그를 '부스럼 딱지'처럼 여긴다.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고 있다'던가, '여자애라서 쓸모가 없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곤 한다. 반면 마틸다의 오빠 마이클에게는 '넌 남자니까 앞으로 내 사업을 물려받으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며 자신의 사기 수법을 알려주곤 하는 아빠의 모습이 나온다.
마틸다네 가족은 매일 저녁 TV-식사를 하는데, 냉동식품을 데워 무릎 위에 놓고 텔레비전 앞에서 먹는 것이다. 대화를 하거나 TV를 보지 않는 등의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입을 다물고 TV에 시선을 고정한 뒤 데운 콩 따위를 먹어야 한다. 하루는, 마틸다가 TV를 보는 대신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묻자 아빠는 분노에 가득 차 어떻게 가족의 전통을 깨뜨릴 수 있냐며 도서관에서 빌려온 마틸다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마틸다는 이런 아빠의 폭력적인 행동을 마음에 담아 뒀다가 아빠가 제일 아끼는 모자에 강력 접착제를 발라놓는 등 소소한 복수를 하곤 한다.
학교에 다니게 된 마틸다는 그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하니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특출남을 알아보아 따로 공부를 가르쳐주고,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돌보아주고, 아동학대를 당했던 자신의 과거까지 나누어 준다. 마틸다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동시에 몸과 마음을 돌봐준 것이다.
이야기의 말미를 좀 더 설명하자면, 마틸다는 아빠의 사기 행각이 들켜 급히 스페인으로 도망치게 된 가족과 함께 살기보다 하니 선생님과 살기를 선택한다. 마틸다의 모부는 '돌봐 줄 아이가 줄어드니 좋다'며 마틸다를 버리다시피 떠나버린다. 마틸다의 오빠 마이클은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지만 엄마 아빠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는다. 마틸다와 하니 선생님은 그들의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꼭 붙어 바라본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친다.
마틸다는 결국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아동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범죄자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될 마이클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엉뚱하게도 마이클에게 마음이 쓰였다. 마이클은 단 한 번도 부모의 말에 말대꾸를 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말들도 조용히 듣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인다. TV-식사에도 불평 없이 참여한다. 그런데 마이클의 침묵에서 나는 학습된 무기력 같은 걸 느꼈다. 내가 말해봤자 달라질 것 하나 없는 상황에 대한 완전한 포기. 체념, 짙은 무력감이 느껴졌다.
마틸다야 하니 선생님과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스페인으로 도망치게 된 마이클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양육자,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는 양육자 밑에서 자라나게 될 마이클. 마이클은 마틸다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대신 '나도 너와 함께 남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
비록 가정 내에서 부모의 지원과 기대를 받는, 맏아들이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실 마이클도 누구에게도 돌봄 받지 못했다. 마이클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친구는 있는지, 하고 싶은 말이 있진 않은지 그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마이클은 정물처럼, 부모가 원하는 위치에 존재하기만 했다. 스페인으로 도망칠 때도 자신이 다니던 학교와 친구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마이클은 부모의 통보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물 같은 존재여야 했다.
그 시대의 어린이는 대부분 그런 대접을 받았던 걸까.
그럼, 지금의 어린이는 1980년대 소설에 나오는 마이클과는 달리, 온전히 자기 의견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고 있을까.
80년대의 어린이와 이천년대의 어린이의 가정 내 위치나 대우를 비교해보면 뭐가 크게 다를까 싶었다.
가정의 중요한 결정-이사를 한다던가 하는-들은 어린이의 의견이 배제된 곳에서 결정지어지곤 한다. 가정 내 중대사 공론장에서 어린이의 의사는 크게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른의 상황에 따라 어린이의 거취가 결정된다. 그런 결정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애를 너무 오냐오냐하면 버릇없어진다'나 '애가 뭘 알아'같은 말들이 아직도 사회에 통용되고 있으니까.
아동학대는 아주 작은 데부터 싹터서 점점 자라난다. 내 삶과 행동을 세세히 뒤져보지 않으면 그 싹을 미처 잘라내지 못해 어느덧 커다랗게 자라난 학대의 줄기를 보게 된다. 사소한 핀잔의 말이나 아이의 발언을 무시하는태도가 거듭되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어른 말을 들어!'하며 큰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처럼.
아무튼 마이클을 생각했다.
마이클은 아빠처럼 사기꾼이 되어버렸을까.
아니면 깊은 무력감을 못 이겨 우울한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아니면 어느 순간 각성해 마틸다처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까.
마이클에게도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가정 내 학대를 막아주는 존재가 생기기를, 그래서 결국엔 '아이답게' 자라날 수 있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이클들, 가족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기회가 주어지길. 아니, 내가 어린이에게 깊은 이해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어른이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