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서관 대출 카드가 든 지갑. 왠진 모르겠다. 도서관 대출 카드가 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4. 요가복 두 벌. 반나절만에 마르기 때문에.
5. 노트북. 전 배우자에 대해 뭐라도 쓰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6. 내 나이랑 똑같은 낡은 곰인형
더는 생각나는 게 없다. [기사단장 죽이기] 책에서도, 이혼해달라는 배우자의 말에 주인공은 집에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스포츠백 하나에 들어갈만한 짐만 싸들고 집을 나간다. 필요한 건 그때그때 샀다. 나도 그러면 될 것 같다. 양말도, 수건도 일일이 챙길 필요가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된다.
집에 있는 물건 중 없어선 안 되겠다 싶은 건 곰인형뿐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제조되어 근 40년 묵은 그 인형은 나 말곤 아무도 아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집을 나가거나 죽게 된다면 바로 버려지겠지. 그 곰인형 말고는 전부 대체 가능한 것들이다.
12월을 맞이하면서 짐을 좀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이 너무 무겁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 책도 너무 많다. 그런데도 계속 사들인다. 옷도, 신발도 너무 많다. 한 해를 마치며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니 다 너무 무겁다. 당장 떠날 수 없도록, 생이 너무 묵직해서 한시도 그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속박하고 있다.
요 며칠 새 몸과 마음의 짐을 좀 비웠다. 책도 나누고, 얼마간 안 입은 옷은 싹 정리했다. 그래도 아직, 뭐가 많다. 공기 청정기도 건조기도 당시엔 너무 필요한 것 같아서 샀지만 생필품은 아니었다. 비가 오면 건조기를 쓰긴 하지만 여전히 햇빛에 빨래를 넌다. 공기가 탁한 것 같으면 환기 한번 하고 바닥을 자주 닦으면 된다.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많은 것들이 의미 없음의 영역으로 조금씩 물러나며 그 위치를 달리했다.